“작년 강원도서 추행 당한 후
피해자 10개월 간 고통” 주장
지목된 작가 “기억 안 난다”
대구지역 문화예술계 최초로 가해자 실명을 밝힌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폭로가 나왔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중견화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로,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 운동이 촉발된 이후, 대구지역 가해자 실명이 공개된 미투 폭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 첫 가해자 실명 거론 폭로인 만큼, 이를 계기로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피해 사례가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추가로 나올 지 주목된다.
30일 #미투대구시민행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에 따르면 화가 A씨는 지난해 6월 대구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화가 정모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자인 A씨가 이날 언론에 배표한 입장문과 여성단체의 주장을 종합하면, A씨는 2017년 6월 12일 강원도의 한 호텔에서 정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사과를 받지 못한 채 10여개월 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왔다. A씨는 입장문을 통해 “사건 발생 이후 최근까지 몇 차례 정씨에게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명백한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알렸지만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는 성폭력 사건 발생 이후에도 만취상태로 원치 않는 연락을 수차례 해 와 지속적으로 가해자의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며 “가해자의 이 같은 행동이 존경받아야 할 예술가의 일탈이고 기행인 양 웃음으로 넘겨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미투로 대구 문화예술계에 드러나지 않지만 만연하게 자행되는 성폭력이 근절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구지역 여성단체도 공동 대응에 나섰다. #미투대구시민행동 등은 30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계 내 성폭력 가해자의 엄중처벌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 단체는 대구시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그 한 고리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TF(태스크포스)팀 구성 △성폭력 특별실태조사 실시 △문화예술계 성폭력 신고 창구 개설 등을 대구시에 요구했다. 이 같은 대책이 담긴 요청서는 이날 기자회견 후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과 여성가족정책관실에 전달됐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깊은 고민 끝에 나온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이 대구 문화예술계의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단체 측은 문화예술계 성범죄 근절 대책 마련과 관련, 향후 일정을 조율해 대구시와 공식적인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가해자 처벌을 위해 30일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6월 A씨의 강원도 작업실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그가 술에 취한 나를 호텔로 바래다 준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그 후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문제가 불거진 만큼 당사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자숙할 부분이 있다면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