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보 달아난 사람이 백 보 달아난 사람 비웃는다 (五十步笑百步)
오십 보 달아난 사람이 백 보 달아난 사람 비웃는다 (五十步笑百步)
  • 승인 2018.05.2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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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 교장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나 초임교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에는 책상 하나에 두 명이 앉아서 공부를 하였다. 그 책상은 항상 두 사람의 다툼 대상이 되었다. 힘이 센 아이가 책상의 반을 넘어서 침범하여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책상 가운데 줄긋기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두려워 그냥 줄만 긋다가 나중엔 칼로 확실한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칼자국 표시의 흔적 때문에 선생님이 벌을 주려하면 두 사람은 항상 변명을 하였다.

“철수가 먼저 크레용으로 선을 그었어요.”하면 철수는 “나는 칼로 긋지는 않았잖아.”하곤 했다. 교사가 판단하기엔 두 아이의 변명은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이다. 두 아이가 조금 못하고 좀 나은 점의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아 잘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요즘 정치판이 이것과 대동소이한듯하다.

양 혜왕이 맹자에게 자랑스럽게 “나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온 힘을 다 쏟고 있습니다. 하서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곳의 백성들을 흉년이 들지 않은 하동 지방으로 이동시키고, 하동 지방의 곡식을 하서지방으로 옮깁니다. 만약 하동이 흉년이 들면 역시 그와 같이 합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나만큼 하는 왕이 없습니다. 내가 다스리는 위나라에 백성이 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지요?”하고 물었다. 당시엔 백성이 늘어나야 국력이 커지는 것이었다.

맹자가 “왕께서는 싸움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둥둥’ 북이 울려 만약 백병전이 벌어졌을 때, 병사들은 겁에 질려 갑옷을 벗어 던지고 창칼을 질질 끌면서 달아납니다. 그런데 어떤 병사는 백 보를 벗어나서 멈추고, 어떤 병사는 오십 보를 벗어나서 멈춥니다. 이 때 오십 보를 벗어난 병사가 백 보를 벗어난 병사를 보고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되물었다.

양 혜왕은 머쓱해하며 “오십 보나 백 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 역시 달아난 것입니다.”하였다. 동시에 눈치를 보며 맹자의 가르침을 기다렸다.

맹자는 백성들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먼저 농사에 대하여 힘쓰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학문을 일으키는 것만이 왕도정치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무농책(務農策)과 흥학책(興學策)을 일컫는다. 교육을 진흥하는 목적은 백성들에게 효제(孝悌)를 가르쳐서 도덕교육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해질 때 비로소 이상적인 사회가 된다고 본 것이다.

만약 흉년이 들어 배가 고파 백성들이 길바닥에 쓰러진다면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하늘의 잘못이다.”하는 것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이것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칼이 죽인 것이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는 패도정치와는 사뭇 달랐다. 맹자는 양 혜왕, 제 선왕, 등 문공을 찾아가서 왕도정치를 실현코자 하였던듯하다.

얼마 전 미국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4명의 전직 대통령과 4명의 전·현직 퍼스트레이디가 사진을 찍은 장면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그들도 30여 년간 대통령 선거에서는 치열하게 설전을 벌여가며 다퉜던 정적들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이 한 장의 사진에 미국의 품격이 담겼다.’며 감동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시골엔 공동 우물이 3개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새 샘이 가장 늦게 생긴 우물로 깊이가 깊었다. 물을 길을 때는 두레박을 사용하였다. 그 우물도 심한 가뭄이 들거나 많이 사용하면 가끔씩은 두레박줄이 닿지 않을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떤 사람들은 두레박줄이 짧은 것을 탓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물 깊은 것을 탓하며 투덜거렸다. 다른 우물이 있는데도….

명심보감에 ‘불한자가급승단(不恨自家汲繩短) 지한타가고정심(只恨他家苦井深)’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은 것을 탓하지 않고, 남의 집 우물 깊은 것만 탓하는 도다’의 뜻이다. 오십 보 달아난 사람이 백 보 달아난 사람을 비웃는 어수선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얼마 전 ‘의인상’을 만든 구본무 회장이 많은 감동의 이야기를 남기고 숲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우리는 단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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