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 문화, 좀 달라졌으면…
예식 문화, 좀 달라졌으면…
  • 승인 2018.05.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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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지난 주말에도 종종걸음을 쳤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으면서 결혼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청첩장도 모바일로 주고받을 수 있고, 청첩장에 인쇄된 계좌로 축의금을 송금할 수도 있으니 빠르고 편리한 시대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아니,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예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하객들이 경쟁을 하듯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조금만 늦어도 편안하게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어쩔 것인가.

밥이라도 먹고,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와 혼주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오랜만에 만난 하객들끼리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커피라도 한 잔 나누다보면 밀린 숙제 한 가지 해결한 것처럼 속이 후련해진다.

우리의 예식 문화에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의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아름다운 관습이다. 혼례나 상례 모두 집안의 큰일이며,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임이 분명하다. 혼주와 하객 사이에 부조(扶助) 주고받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마음보다 도의적 의무 같은 체면이나 형식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이 못내 아쉽다는 말이다.

결혼식장 주변은 주차전쟁으로 홍역을 치르기 일쑤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주차를 하지 못해 예식이 끝나도록 식장에 도착을 못하는 일도 더러 발생한다. 예식장 뷔페는 음식물 쓰레기 천국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니, 음식에 대한 의식이나 질서가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결혼식을 전문으로 하는 예식장에서는 주말을 이용해 매 시간마다 빈틈없이 식을 치러야하니, 정해진 시간에 식을 마치고, 쫓기듯이 사진을 찍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음 신랑신부를 위해 홀을 비워줘야 된다. 엄숙하고 진지한 예식보다는 마치 한 쌍의 부부를 생산해내는 공장처럼 기계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나라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장면을 본 것은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대부분이다. 하객의 수보다는 가족, 친지로부터 진심어린 축하와 위로를 받는 모습이 부러울 정도로 진정성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또는 몇 명의 증인과 함께 종교시설이나 관공서 등에서 간단하게 절차를 밟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사례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가까운 어떤 나라에서는 꼭 필요한 지인에게만 청첩장을 보내고, 청첩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결혼식에 참석조차 못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주변에도 간혹 가까운 가족과 친지만을 초청해 매우 간소하고 조용하게 예식을 치르기도 한다.조금은 특별한 장소와 방식의 이색 결혼식이 신선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축의금과 조의금을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불우이웃에게 기부하는 아름다운 사연도 전해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우리의 예식 문화가 보다 현실에 맞고 개성 있게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못하는 것은,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위로를 받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지나치게 형식에 그치는 것은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기 좋아하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삶의 방식이자 가치관이다. 인류의 역사와 같이 걸어온 삶의 질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도덕이나 전통, 예술 등 사람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지는 문화는 시대마다 사회마다 늘 변하고 진보하기 마련이다.

다양성의 사회에, 주차장이나 뷔페가 없는 예식장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차분하게 여유를 느끼며 겉치레보다 내용이 더 알찬 예식을 치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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