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제왕국
억새 제왕국
  • 승인 2018.07.0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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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국




억새 마른 수염이 서로 몸 비비고 있는

그 속으로 어둠을 닦는 빗줄기

그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각의 땅

그 다문 입술이 살포시 벌어지는 입구



억새는 언덕을 한 무리로 올라

바람을 억수로 불러 모으려고

어둔 산자락 멀리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는 시골동네 불빛처럼



12월 대설 뒤쯤

눈발 속에는 빗방울과 뇌성이 머물러 있다



입구를 찾을 수 없는 언 땅

사람들을 쫓아낸 들녘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농로 위로 어제의 시간들이 단풍들어

상해 버린 낙엽들

억새 모진 뿌리 밑을 덮고 있다



 ◇제왕국 = 경남 통영 출신

 시민문학협회 자문직을 수행

 한국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등 활동 중

 시집 <나의 빛깔>, <가진 것 없어도> 등



<해설> 겨울 능선에 비가 오고 가을을 입은 바람이 억새를 흔들고 있다. 그 언 땅을 부드럽게 녹이듯 어둠을 닦는 빗방울, 그때부터 억새는 속으로 울던 울음 뚝 그치고 비로소 얼었던 속내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언덕에 한 무리로 몸 비비며 사는 억새 그 속으로 찬란한 빛이 쏟아지면서 생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추수 끝난 들녘의 리얼한 감성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코믹한 언어들이 이 詩에 정갈하게 녹아 서정성의 미학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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