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들과 서랍 속에
삼년을 방기했던
분꽃씨 한 줌
붉은 꿈들로 꽉 찼던 알알들은
녹슨 커터 칼이 깎아 먹고
낡은 펜촉이 찍어 먹고
구겨진 낙서장이 흡입해서
한 점 뼛조각만 남았다
오늘
촉촉한 솜뭉치에
그 뼈 한 점 싸 두었다가
볕 잘 들고 윤택한 흙에 심는다
울타리를 자갈로 둥글게 치고
문패처럼
노란리본 꽂는다
◇김재순= 경북 상주 출생. 2003년 ‘작가정신’
으로 등단. 시집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해설> 어디서 얻어왔던지, 어디서 채취했던지, 분꽃씨앗 한 줌이 서랍에서 꽃피움을 잃어버렸다. 씨앗으로써의 가치를 잃었다는 이야기다. 시인은 땅에 묻고 노란 리본을 달아 줌으로서 실수를 “수습하다”라고 끝을 맺는다. 이렇듯 우리네 삶 속에는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가 상대의 평생 꽃피움을 막아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매사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는 메시지는 아닐까 한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