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우면 가라앉는다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 승인 2018.07.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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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안타까운 사람을 잃었다. 그의 죽음을 휴대폰을 통해 처음 접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뒤 섞였다. 놀람, 안타까움, 분노, 합리적 의심, 그리고 덧없음. 유난히 햇살은 따가운 날이었다. 그날 하루는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렸다. 또 누군가는 잔치 국수를 먹고 축하를 한다는 둥 다른 감정과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내 감정이 이렇다고 반대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사람이 죽었다. 같이 애도의 마음은 가져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이제는 고인(故人)이라고 해야 할 그, 노회찬 의원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지지자도 아니었고 그가 속한 정당에 속하지도 않았지만 먼발치에서 그가 가진 생각에 공감이 간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촌철살인 같은 유머 섞인 말들을 들으며 때로는 통쾌했고, 때론 반성을 했었다. 그의 죽음 이후 TV에서는 그와 관련된 방송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한 방송에서 진행자가 생전에 그와의 추억을 얘기해주었다. 평소에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많이 사용하는 그에게 진행자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어려운 세월 견뎌 내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밝음을 유지하실 수 있냐?”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다시 내 머릿속 생각의 숲에서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무거운 모습으로 서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세월의 탓이라는 핑계로 너무 무거워져 버린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폼 잡고 서있는 무거운 얼굴의 우리가 보였다. ‘그런 척’ 해야 했고, 때론 ‘안 그런 척’ 해야 했다. 우린 좀 더 가볍게 살았어야 했다. 더우면 물에 뛰어들고, 추우면 이불속으로 들어가 까불고 웃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버티려 했다.

가장 먼저 우리의 얼굴을 속였다. 슬픔과 분노, 미움 등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가볍게 드러내지 못하고 미소라는 무거운 가면으로 덮어야 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무거운 옷들을 겹쳐 입어야 했다.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더우면 아무데서나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고 뛰어놀다가 잠들던 어린아이 시절이 생각난다. 다리가 아프면 앉으면 되고, 그래도 불편하면 벌러덩 들어 누우면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워야 했다.

아침밥을 먹는데 TV에서 4명의 파라과이 여성들이 나와서 한국을 여행하는 모습이 나왔다. 4명의 여성들은 주위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맞춰 나오는 분수대 물줄기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린아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나도 저렇게 놀고 싶었다. 분수대 옆에 돗자리 깔고 어른이랍시고 구경만 하고, 입에 먹을 것만 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분수대 물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무거워져 있었다.

싱거운 농담에도 함께 웃으며 낄낄거릴 가벼움을 가져야겠다. 최대한 가볍게 몸에 지니고 여행을 가고 싶다. 평생 같이 살 사람을 찾듯 만나는 사람을 무겁게 대하지 말고, 내일이면 다시 볼 수 없어 그리운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 함께 웃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가벼운 인연들도 때론 필요함을 느낀다.

“무거우면 가라앉는다.”라는 생각으로 평상시 유머로 정치인 같지 않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그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왜 그날은 가볍지 못했을까? 왜 그날은 그렇게 무거워야 했던 걸까? 아쉬움이 너무 남는다. 조금만 가벼웠더라면, 도덕적 잣대가 조금만 더 가벼웠더라면, 잘못이 있다면 응당한 처벌을 받고, 그렇지 않다면 뚫고 나가면 되었을 것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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