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꿰는 시(詩)
그물을 꿰는 시(詩)
  • 승인 2018.08.1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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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문학은 쓰고 읽는 일이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등을 포괄적으로 문학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문학인이라 일컫는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큰 범주로는 독자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작품을 낭송하거나, 평을 하고 재조명(再照明)하는 일도 문학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학으로부터 동떨어지긴 힘들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안전유리문에 적힌 시를 읽어보는 일,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문학을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모두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문학인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시를 쓰면 시인이고, 소설을 쓰면 소설가라고 한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간혹 수필집도 발표를 하는 작가의 이력은 부산스럽다. 포털사이트마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방송인, 화가 등등 재주 많은 그를 모두 설명하기는 벅차 보인다. 그래서 ‘종합 예술인’이라는 편리한 용어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요즘 문학인들이 많아졌다. 독자는 줄어드는데, 필자들은 늘어났다. 문학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수백만원을 들여, 자비(自費)로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했다.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시설에서도 ‘1인 1책 만들기’ 라는 캠페인을 통해서, 직접 저자가 되어보는 체험을 가지는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책 만들기 전문 강사라는 신종 직업도 생겼다. 이들은 종횡무진, 전국을 다니며 ‘책을 만들고 저자가 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교육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자출판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웹툰과 소설이 결합된 형태의 온라인 문학도 선보이고 있다. 문학작품으로 만든 TV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신속하게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책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적어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할 것이 아닌가. 저자가 되면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할 것이며, 그러다보면 행동거지도 신중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의 희소가치(稀少價値)를 논하는 기성문인들이 등장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진다. 독자들은 더 좋은 작품을 만날 권리가 있고, 작가들은 더 좋은 작품을 써야할 의무를 가진다. 기성작가로서의 대우를 받고 싶으면, 인맥(人脈)보다 문맥(文脈)을 헤아리는데 더 신경을 쓰면 그만이다.

삶은 그물망으로 얽혀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가 모두 네트워크다. 개개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네티즌이다.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과 통신망을 뜻하는 네트워크(network)의 합성어가 네티즌이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그물망, 즉 삶의 유기적인 관계가 건강하고 밝게 하는 일이다. ‘어둡고 우울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뭔가 현학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문학인이어서는 안 된다. 시인은 더욱 그래선 안 된다. 시인이 재담꾼일 필요는 없다. 긴 문장을 줄만 바꾼다고 시가 아니듯, 짧은 문장에 깊은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문학은 해진 그물망을 하나하나 꿰매는 일이다.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낚고, 이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여미는 일이 글을 짓는 일이다. 우리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결합된 이름으로 ‘시(詩)’라고 쓰지만, 서양에서는 포엠(poem)과 포에지(poesy)로 구분한다. 전자가 작품을 일컫는다면, 후자는 작품을 쓰기까지의 마음이다. 진작부터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두고 T.S.엘리엇은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했다. 오죽하면 그리 표현했을까. 이리도 불친절한 문학의 장르를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음을 고백한 셈이다.

시인들이 재주가 많아진 것인지, 재주 많은 사람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정치를 한다. 화가가 시를 쓰고, 가수가 시를 쓰고, 정치인이 시를 쓴다고 해도 또한 즐거운 일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누구나 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단순히 사물과 사람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다. 관찰하고, 이를 통해 성찰에 이르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다.

그래서 글을 짓는다고 한다. 밥을 짓듯이 정성스럽게 쌀을 씻고, 시상(詩想)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솥을 앉히고 뜸을 들이는 일, 이것이 시를 쓰는 일이다. 문학은 평생을 두고 배우는 일임에도, 배우려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문학인들이 많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불손한 일인가. 적어도 문학인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겸양(謙讓)한 자세가 먼저여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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