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 남짓 공간 가득한 열기 “숨이 막혀”
한평 남짓 공간 가득한 열기 “숨이 막혀”
  • 석지윤
  • 승인 2018.08.1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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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동 쪽방촌의 ‘가혹한 여름’
창문도 없는 단칸방 대부분
방 안에서 취사 상상도 못해
열 명 넘게 사용하는 공용 욕실
마음 놓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경기 불황 고용난까지 ‘이중고’
한쪽방촌
지난 9일 대구 서구 비산7동 한 쪽방촌에서 사람들이 평상에 앉아있다.

“방안에 있으면 열기 때문에 숨이 막히고, 밖으로 나오면 햇볕 때문에 뜨거워 죽을 지경이야. 두 팔 벌리고 앉으면 끝인데 냉장고 들어갈 때가 어디 있겠나? 식사 한 번 하려고 하면 뜨거워서 못 견뎌.”

지난 9일 오전 섭씨 35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 뙤약볕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대구 서구 비산7동 쪽방촌 거주민들은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월세 15만~16만 원 정도의 쪽방은 대학가의 원룸보다 작은 1평 남짓한 작은 방이다. 부대시설은 적게는 8명, 많게는 16명 이상의 거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도와 화장실이 전부다. 살펴보면 바람이 들어올 창문조차 없는 방들이 대부분이다.

전국이 폭염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이른바 ‘쪽방촌’으로 불리는 좁은 공간에 거주하는 영세민들의 더위 고통은 더욱 심하고 특별하다.

3.3㎡ 남짓한 단칸방에서 박종환(60)씨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문이 뚫려 있지 않은 공간에는 바람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았다. 박씨는 열린 문 바로 앞에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가리켰다. 그는 “방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켜놓으면 40도는 넘어설 것”이라며 “방 안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냉장고가 없어 제대로 끼니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다. 소주 한 병으로 더위를 잊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박씨가 거주하는 달셋방은 월세가 15만 원이다. 끝 방의 경우 창문이 달려있어 2만 원 가량 더 비싸다.

5년 째 끝 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홍철(49)씨는 달려있는 창문도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바닥 선풍기까지 고장 나 말썽이다. 김씨는 “창문이라고 해봐야 크지도 않다”며 “선풍기는 덜덜 소리가 나고 영 시원찮게 돌아가서 죽을 맛”이라고 했다.

쪽방촌의 단칸방은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 작은 팻말에 ‘욕실, 화장실 있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거주인은 욕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데다 좁아서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명흠(45)씨는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욕실 하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씻을 수가 없다”며 “하도 더워 욕실 물을 퍼다 바닥에 뿌리는 것은 자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옥상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서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선풍기에 젖은 수건을 걸쳐놓지만 뜨거운 바람이 부는 건 매한가지”라고 전했다.

권씨는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와서 라면 몇 봉지를 주고 가면 한 두 끼 정도 챙겨먹는다고 했다. 특별한 대책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던 그는 여름철 보양 음식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쪽방 거주민들은 사실상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방마다 자리를 차지하는 오래된 선풍기가 더위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뿐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몇 해 전까진 등목을 하고 그늘에서 쉬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는데 올해 더위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김명행(79)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지원금을 받거나 일용직으로 돈을 벌어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공사장에서 일해 생계를 꾸리는 이호진(61)씨는 “지난달에는 8일밖에 일을 못해서 수입이 적었는데 이달 들어선 하루밖에 못 갔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날씨와는 상반되게 얼어붙은 경기 탓에 일용직 근로자들을 위한 일자리도 줄어들어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과 호구지책의 2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이 바뀐 후 대통령은 복지 관련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각 자치단체장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요 공약에 복지를 언급하며 표 몰이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복지는 과연 이곳 쪽방촌에 혜택으로 적용됐을까.

8년째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영찬(66)씨는 “말로만 서민, 서민 그러지 선거철 지나고 방송국 카메라 없으면 거들떠도 안 봐”라며 “이번에 시에서 쿨매트인지 뭔지 나눠주긴 했지만 이런 곳에는 그게 쓸모가 없어”라고 정치인들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이씨뿐 아니라 거주민들 대부분은 정권이 바뀌고 지자체장이 바뀌어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거창한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나이 든 사람들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라며 “나이가 드니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져 생활이 어렵다”라고 주민들 대부분이 입을 모아 말했다.

뜨거운 걸 넘어 숨이 턱턱 막히는 정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비산7동 쪽방촌의 공기는 갑갑했다. 이는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폭염과 내리막 경기, 주민들을 옥죄는 고통에 쪽방촌은 하루하루 버티기로 올해 여름을 힘겹게 나고 있다.

석지윤·한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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