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 펄, 홍순환전
아트스페이스 펄, 홍순환전
  • 황인옥
  • 승인 2018.08.15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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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회화에 대한 반기
정의 내릴 수 없는 형태와 색 표현
“새로운 감각, 자율성 회복하고파”
홍순환작가 (2)
통념에 반기를 들며 예술적 지평의 확장을 모색하는 홍순환 초대전이 아스트페이스 펄에서 24일까지 열린다.
아트스페이스 펄 제공


“문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열리고 있는 홍순환의 전시장에서 대하소설 ‘토지’로 잘 알려진 박경리 선생이 생전 했던 말이 맴돌았다. 박경리 선생은 ‘왜’라는 질문이 없는 상태야말로 문학의 종결상태라며 문학의 멈춤 없는 출발을 위해서 ‘왜’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던져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생의 문학 인생 역시 ‘왜’라는 질문과 마주한 시간들이었다.

홍순환의 예술적 서사 역시도 ‘질문’의 중첩과정과 다름 없었다. 작가는 설치와 회화 등의 작업을 통해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천적인 방법론을 모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 장르에 대한 반사적 질문을 통해 회화의 새로운 출발점을 모색한 것도 맥락은 같다.

“펄 전시는 ‘회화는 이런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공고화된 회화의 권력에 대한 반기이자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선언격인 전시에요.”

이번 전시에서 검정 테이프가 눈을 사로잡았다. 엄지손가락만 하거나 점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검정 테이프가 고목에 매달린 매미처럼 화폭 한켠을 차지했다. 오브제라고 하기에 이물감이 과했고, 과한 이질감이 반예술로 느껴졌다. 정확히 거슬렸다. 설치과정의 실수일까 싶어 작가에게 묻자 “장치”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 짧은 답에서 박경리 선생의 질문 ‘왜’가 겹쳐졌다.

“전시장에 작품을 걸고 나서 문득 검정 테이프를 붙이고 싶었어요. 평면회화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할까요? 검정 테이프는 기존 회화에 대한 항변적 세리머니(ceremony)죠.(웃음)”

전시제목이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이다. 전시된 회화들이 제목을 똑 닮아 있었다. 하나같이 색과 형태에서 모호했다. 구상이나 추상 중에서 ‘이것’ 또는 ‘저것’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한 동료 작가는 그의 회화를 보고 ‘당혹스럽다’는 평을 남겼다. 회화가 다분히 아방가르드 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고정관념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작품이니 당연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업을 하다보면 일정한 방향성이 생기는데, 그 방향성이야말로 관성이 되는 첩경이죠. 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가 긴 시간 구축해 놓은 지위 고정관념을 흩트리고 싶었어요.”

작가가 ‘왜’라는 질문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단연코 자율성이다. 그리고 자유의지다. 시간의 중첩에 의해 인류가 구축해 놓은 통념, 또는 인류를 둘러싼 ‘생태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를 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중력’을 주제로 설치작업들이 그 연장선이다.

“인간은 중력을 중심으로 삶을 만들어 왔어요. 중력에 지배당해 왔죠. 우리는 환경뿐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 놓은 통념들에도 지배당하고 있죠. 다른 말로 자율성의 훼손이죠. 저는 그러한 구조적 우월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자율성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구조적 우월함을 타파하는데 작가가 경계하는 대목은 이성이다. 이성이야말로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방해요소로 인식된다. 작가에게 이성은 구조적 우월함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제일 뿐. 그렇다면 이성을 대신할 대안도 있을까 싶어 물었다. 작가는 ‘감각’ 또는 ‘동물적 직관’을 제시했다.

“현대미술에서 정보도 많고, 가끔 교조적인 입장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죠.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것들은 방해요소에요. 이성을 완벽하게 떨쳐 버릴 수 없지만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한계상황 안에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겠죠.” 전시는 24일까지. 053-651-6958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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