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병(臥病)
와병(臥病)
  • 승인 2018.08.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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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아픈 세상은 오늘도 아프니
오늘로 이어지는 어제의 아픔은
내일의 세상까지도 원죄로 윤회할 것이다

세상은 아프고 아플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유혹하는 아픔이여, 고통이여
세월 따라 나는 검은 그림자로 사라져다오

음울한 골 고을마다 끊어지지 못한
창자 에는 통곡소리 가득한데
세상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으니
나는 정말 아픈가 보다

연골 닳아 너덜해진 세상은 허연 뼈 부딪히며 울부짖는데
거센 세파(世波)가 갉아먹은 골다공(骨多孔) 구멍 뚫린 이성은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니
나는 정말 큰 병에 걸렸나 보다

온통 희망을 갈망하는 아우성으로 파도치고
불안한 심장을 쥐어짜는 흉흉한 세상에는
애끓는 목소리로 울리는 평화의 기도 소리 가득한데

나는 왜 삶을 예찬하는 환각 짙은 죽음이 그리운가

나는 왜 빛나는 신의 영광 앞에 나른한 현기증이 나는가

나는 왜 길게 늘어져 누운 세상의 병든 옆구리가 따뜻한가

뒤틀린 세상의 관절을 꺾어 낙타무릎 꿇리고 하늘 높이 앉으니
가벼운 죽음이 주는 짜릿한 공포로 살아온 삶이 비로소 절정이다

이토록 염치없는 삶이어도 나는 살아있고
악다구니도 치지 못하는 세상은 죽어 가는데

말라 비틀어져 휘청거리는 세상의 골수를 파먹으며
나는 오늘도 살아있고
밥 먹고 똥 싸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가쁜 숨 몰아쉬며 헐떡이는 조각난 세상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어둠이 낳고 기른 나의 빛나는 에고여,

세상은 말라 비틀어져 죽어도 너는, 처절하게 살아남아라!





◇채형복 = 대구 출생. 시집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우리는 늘 혼자다’, ‘저승꽃’, ‘묵언’, ‘바람구멍’,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



<해설> 시(詩) 곳곳에 자아(에고)에 대한 아픔이 조각조각 되살아난다. 육체의 아픔보다 자아의 고통이 더 심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끝내 살아남아야 하는 철저한 저 모순이여! 그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낮은 등고선의 당위성이 아닐까?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에도‘고중유락(苦中有樂)은 있으니까.

※ 고중유락(苦中有樂) :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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