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선한 사마리아인에 작별을 고하다
대한민국의 선한 사마리아인에 작별을 고하다
  • 승인 2018.09.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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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엽 이비인후과 원장,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지난 5월 경기도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은 받은 환자가 아나피락시스 쇼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시술을 한 한의사는 시술후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자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가정의학과의사는 환자 상태를 확인 후 119가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조치를 시행하였다. 종합병원으로 전원된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하였다.

사망사고를 일으킨 봉침의 안전성 논란은 예로부터 있어왔으며 이번 사망사고 후 안전성과 효용성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어 봉침에 대한 안전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봉침 시술을 받고 사망한 환자의 유족이 봉침 시술을 한 한의사를 형사 고소하면서 동시에 한의사뿐 아니라 응급처치를 시행한 가정의학과 의사를 상대로 9억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유족 측 변호사에 의하면 가정의학과 의사가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서 일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유족 측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한 일간지와의 통화에서 “확보한 CCTV 영상을 보면 응급 상황에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골든타임으로 볼 수 있는 4분 이내에 에피네프린을 투여하지 못하여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현호 변호사는 “처음부터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몰라도 응급 상황에 갔다면 보증인적 지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직접적인 불법 행위자가 아니더라도 한의사를 도와주러 갔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해야 한다”고 하며 가정의학과 의사에게도 일부 책임을 지우려 하고 있다.

2016년 택시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가던 중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택시에 탑승한 승객은 택시기사가 의식을 잃었음에도 119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골프 여행 비행기시간에 늦을까봐 자신의 짐만을 택시 트렁크에서 꺼내어 떠나버렸다. 결국 택시기사는 응급조치 한번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사망하였다. 최소한의 응급조치는커녕 신고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난 택시 승객은 윤리적으로는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법적으로는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은 후 아나피락시스 쇼크에 빠진 환자를 구하기 위해 소신껏 응급처치를 시행한 가정의학과 의사는 윤리적으로는 칭송을 받을지 모르나 법적으로는 9억의 민사소송을 당하였다.

최종판결과는 별도로 한 개인에게 있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사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생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가정의학과의사는 선의를 가지고 응급조치를 하였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감사인사가 아님 고소인 것이다.

선의로 불특정인을 도와준 의사가 고소를 당한 이번 일은 향후 대한민국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선의를 가지고 남을 도와주었음에도 고소를 당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런 나라의 국민이 앞으로 그 누가 위험에 빠진 불특정인을 도우려 나설 수 있겠는가…

예수의 유명한 비유중 하나에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것이 있다.

행인이 강도를 만나 다쳤는데 유대인은 모른 체하며 지나쳐버리던 중 유대인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을 돌봐주고 돈까지 준데서 유래하였으며 이후로 위험에 처한 불특정인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게 되었다.

미국, 일본 등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인지했을 때 본인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경우에 타인을 위험으로부터 구조해 줄 의무를 부여한 법으로 어찌 보면 도덕적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응급의료법(제5의2)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이 말은 최선의 응급처치를 하였더라도 봉침사망사건처럼 언제든지 고소를 당할 여지가 있으며 응급처치를 제공한 자가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법정에서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면서 직접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응급의료법(제5의2)에서 ‘중대한 과실’ 여부를 삭제해 고의가 아니라면 응급처치를 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호하여야 한다.

봉침사건의 의사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곤경에 빠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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