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는 명소 대신 가까운 녹색숲서 ‘조용한 힐링’
북적이는 명소 대신 가까운 녹색숲서 ‘조용한 힐링’
  • 김광재
  • 승인 2018.09.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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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가볼만한곳

명절이면 으레 공항이 북적이고 유명 관광지 호텔이 만실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그래도 아직은 귀성객이 여행객보다는 훨씬 많다. 열차표는 늘 매진이고 고속도로 교통체증은 여전하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명절에 모인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다.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조카들 데리고 ‘바람 쐬러’ 갈 만한 곳은 없을까? 대구 근교 가볼만한 곳 세 곳을 소개한다.

반곡지
옅은 안개가 낀 반곡지.


◇경산 반곡지

 

‘수령 300년’ 왕버들 반겨주는 곳
스마트폰으로도 ‘인생샷’ 가능

경산은 저수지가 많은 고장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일부 메워졌어도 여전히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어릴 적 두어 번 밤낚시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기억나는 것은 솔못, 토산지란 못 이름과 깡통 고체연료, 라면, 지루함 그리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풍경 등이다. 반곡지로 가는 길, 아침 안개가 옛 기억을 불러온 것이다.

반곡지 주변은 주차장, 화장실, 팔각정, 산책로가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마지막 남은 안개 알갱이들이 햇살을 흩어버려 풍경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반곡지가 유명해진 것은 사진 명소라는 소문이 퍼지면서이다.

수령 200~300년을 헤아리는 왕버들과 하늘이 수면에 비친 모습이 신비롭고, 철마다 시각마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감탄사가 나오는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제법 그럴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이 목적인 나들이가 아니라면, 카메라가 주목하지 않는 작은 것들을 살펴보면서 천천히 못 주변을 산책하면 좋다. 갈대, 물오리, 벌써 다음 해를 준비하고 있는 복숭아나무들도 찬찬히 살펴보자. 특히 20여 그루 왕버들은 그 모습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한다지만, 못 둑에 심어진 왕버들의 가지는 왜 물로 뛰어들고 있을까. 힘줄이 툭툭 불거지고 뒤틀린 나무 둥치가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이어서, 그 뜨거움을 식히려 물로 뛰어든 것일까. 아니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물가에 심겨 있는데도 물이 그리워 몸을 한껏 기울인 것일까. 그렇게 가지 끝이라도 물에 담갔으니 200년 묵은 갈증이 조금은 풀렸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헛된 상상과 연상을 통해 우리는 풍경을 기억하게 된다. 카메라는 빛으로 풍경을 기록하지만, 우리의 눈과 뇌는 이렇게 이야기를 동원해 사진을 찍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 저수지 풍경을 볼 때마다 함께 반곡지에 갔던 사람을 기억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반곡지는 경산 시내에서 상대온천 방향으로 가다 온천 못 미쳐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있다. 반곡지 가는 길에 삼성현역사문화공원도 있으니 오는 길에 들러도 좋다.

 

대적사
이중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대적사 극락전 기단의 거북이와 게 조각.


◇청도 대적사

 

정면 3칸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
새겨진 조각들, 한 편의 연극인 듯

 경부선 철도 폐터널을 이용한 청도 와인터널은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터널 입구 양쪽으로는 감말랭이, 감식초 등 청도 송금마을 특산물을 파는 가게들과 카페, 식당이 늘어서 있다. 휴일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와인터널 왼쪽 오르막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적막한 산사의 분위기로 돌변한다. 대적사라는 아담한 절이다. 와인터널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대적사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적사 극락전(보물 제836호)의 매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문에 금강역사상을 그려놓은 소박한 금강문을 지나면 잔돌이 깔린 마당 건너에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은 18세기경에 지어진 정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오래된 절에서 흔히 보는 작은 법당 같은데 건물이 올라선 기단이 예사롭지 않다. 화강석 판석에 격자무늬를 돋을새김해 놓고, 또 앙증맞은 조각을 해 놓았다. 계단 오른쪽 기단의 거북이와 게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아래쪽에는 게가 있고 위쪽에는 어미 거북이가 새끼의 다리를 물고 있다. 계단 오른쪽 소맷돌에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용과 거북이가 있다. 이 장난기 넘치는 조각들을 직접 보면, 어느 답사 책에서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에 섞여 있다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다’라고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여튼 극락전 기단은 바다를 표현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내륙 산사에 웬 바다? 게다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극락전? 이 전각이 극락전이라는 데서 수수께끼는 풀린다. 중생들을 태우고 극락정토로 데려다주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인들의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상상력은 기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당 가운데 문기둥 위에도 용 머리 장식을 올려 뱃머리 장식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법당 안은 선실이 되고 법당 천장은 하늘이 되는데, 그 하늘 구름 속에는 배를 호위하는 두 마리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물천장에서 용 두 마리가 천장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옆 칸에는 용의 몸통도 슬쩍 드러나 있고, 보 건너편에는 등지느러미가 돋은 꼬리도 만들어 놓았다. 법당을 나와 마당에서 다시 극락전을 마주하면 옛사람들이 들려주는 극락 이야기 연극 한 편을 보고 온 것 같다.

청도 와인터널은 오전 9시30분에 개장하고 추석 당일은 오후1시에 개장한다.

송금마을 아래 남성현역에는 매일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 각 4회씩 선다. 동대구역에서 열차를 타고 다녀와도 된다.

 

한밤마을
한밤마을 돌담길.


◇군위 한밤마을

 

고려 말부터 이어져 온 돌담길 마을
팔공산터널 뚫려 교통 편리해져


돌담길이 아름다운 전통마을이다. 부계홍씨 혹은 부림홍씨의 관향인 부계면 한밤마을은 고려말부터 천년을 넘게 이어온 마을이다. 지난해 개통한 팔공산터널을 지나서 오니 대구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나 싶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굽이굽이 한티재를 넘어야 했고, 한티재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팔공산을 우회해 군위 효령이나 영천 신녕을 거쳐야 했다.

교통이 좋아지면서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삼존석굴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군위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도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됐다. 2012년에는 ‘1박2일’ TV프로그램에 소개돼 전국적으로 이름이 났다. 지금은 도로변에 식당과 가게가 너댓 군데 씩 자리 잡고 있다. 20여년 전 한티재를 넘어와서 본 한밤마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기억 속의 옛 모습을 미화하고 그대로 남아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여행자의 인지상정일 테지만, 마을은 늘 변하고 있다. 새로 생기는 것이 있고 사라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옛날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한밤마을 대청과 그 주변의 돌담 그리고 남천고택은 옛날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그들도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추석 연휴을 앞두고 찾아간 한밤마을은 고요했다. 이끼 낀 묵은 돌담들은 담쟁이덩굴, 호박 덩굴과 속삭이고 있고, 그 모습을 산수유 열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에는 허물어가는 기와집도 몇 채 있었다. 한 채는 뼈대를 살려 리모델링 되는 것 같았으나 나머지는 하릴없이 스러지고 있었다. 마을 서쪽 옛 도로를 따라가 보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벼 이삭이 풍요롭다. 가을은 풍성함과 저묾이 함께하는 계절임을 한밤마을의 산책이 깨닫게 해줬다.

김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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