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의 미학
불협화음의 미학
  • 승인 2018.10.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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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또 갈치국이가?”

엄마 눈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으신 채 아버지는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을 수 없다는 듯 고함을 치시더니 냄비를 마당으로 휙 내 팽개치셨다. 그러자 엄마는 찌그러진 냄비를 좇아가 발로 꾹꾹 눌러 밟으며 애꿎은 냄비에다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곤 하셨다.

“이건 또 머꼬. 파래무침, 꼬막무침에 게장까지 이걸 내 묵으라꼬 차린기가?”

찐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에 청량고추 팍팍 썰어 넣고 간간하게 된장을 푼 시래깃국과 참기름 넉넉하게 넣고 조물조물 무친 산나물을 드시고 싶었던 아버지가 시작한 전쟁이었다.

“그렇게 잔소리 할 거면 서로 먹고 싶은 것 각자 알아서 해 먹읍시다. 애들 보는 앞에서 서로 기운 빼가며 싸울 것도 없으니.”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가끔 벌어지는 엄마와 아버지의 ‘밥상머리 전쟁’에서 어릴 적, 우리는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상도 합천이 고향인 아버지와 전라도 벌교가 고향인 엄마는 영호남의 지역차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살림살이는 시작부터 출생신고조차 제때 할 시간이 없었을 만큼 넉넉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께 출생신고를 대신 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는데 술동이를 안고 사시던 할아버지께선 첫째와 둘째는 한 살 씩 내려놓고 셋째와 넷째는 한 살씩 올려 출생신고를 하셨단다.

가끔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있어 동사무소를 찾는다. 그 때 마다 등본을 확인하는 직원의 눈에선 야릇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할아버지의 ‘삑사리’로 인해 등본 속, 부모님의 사랑은 일 년에 한명씩 그리고 막내까지……. 1남 4녀라는 최고의 하모니로 연주되고 있었으리라.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나와 동생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음식, 취미, 직업, 종교까지 모두 달랐다. 옷을 사러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두색을 둘째는 분홍색, 셋째는 노란색 넷째는 아이보리로 단골 옷가게에선 아예 묻지도 않고 알아서 내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을 주장하곤 했지만 잦은 불협화음속에서도 가족이라는 것 하나로 똘똘 뭉친 우린 한 통속이었다.

밥상을 차릴 때 마다 딸과 아들 사이에서 나는 매번 눈치 아닌 눈치를 살피게 된다. 아버지와 엄마가 밥상머리 전쟁을 치른 것은 지역 차이에서 오는 것이거나 살아온 환경차이라 여겨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같은 성, 똑 같은 환경 안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어쩜 그렇게나 다른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딸이 좋아하는 것은 햄이나 파스타 등의 인스턴트식품을 주로 좋아하는 반면 아들은 청국장, 순두부 등의 토속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좋아하는 부분이 다른 것도 있다. 떡볶이를 만들어주면 딸아이는 어묵을, 아들은 떡만 골라 먹는다. 삶은 계란 하날 두고도 아들은 흰자를 딸아이는 노른자만 골라 먹는 등등 각자 달랐다.

맏이와 막내가 살면 잘 산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장남인 아버지와 9남매의 막내딸인 엄마가 만났듯, 맏이인 나 역시 막내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의 수많은 부딪힘과 삐걱거림 속에서도 단 하나, 한결같은 사랑과 조화로움으로 삶을 완성해 왔듯이 남편과 나 역시 그럴 것이라 믿는다.

‘이혼’ 건수가 2011년 이후 계속 줄고 있지만 결혼 20년이 넘은 부부가 헤어지는 이른바 ‘황혼 이혼’이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는 뉴스가 추석을 전후하여 계속 뜬다. 세 살 터울인 남편과 나의 음력 생일은 각자 다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양력생일이 같다. 이 또한 불협화음속, 최고의 화음이 아닐는지. 노후 대비 중 최고는 ‘황혼 이혼’ 안 하기라는데 결국 부부 생활이란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 가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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