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멀리하려면
명절증후군 멀리하려면
  • 승인 2018.10.0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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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추석연휴 어떻게들 보내셨는지. 우리 일가족은 차례와 성묘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오후 피로에 절어 몽롱해 있던 차에, 영화를 보러가자는 아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 나갔다. 그리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보니 피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명절은 저마다의 위치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차례 상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연례행사인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황금연휴를 이용해 즐거운 가족여행의 기회로 활용되는가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불면과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명절마저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은 자못 피곤한 일임이 분명하다. 달포 전부터 손님맞이 준비를 위해 잠을 설치거나,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집안청소를 하는 등 세세한 일까지 신경을 써야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명절증후군은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명절 전후 가정불화와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례와 제사 등을 두고 누군가 부담을 떠안게 되는 희생이나 가족 간의 의무와 책임을 동반한 이해관계로 마음의 골이 깊어지는 가정이 비일비재한 것은, 함께 풀어가야 할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때마침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3월부터 30회에 걸쳐 기획 연재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에 관심의 눈길이 쏠렸다. 전통적인 관혼상제 및 직장과 공공장소 등 일상 전반에 걸친 불합리한 관습과 예법을 바꿔나가자는 취지의 신예기 시리즈는 변화한 시대에 적법한 예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잘못 전해지고 있는 차례나 제사 등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법도 제시됐다. 젊은이를 위한 제사상 차림과 제사 간소화 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생각은 하면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허례허식을 고쳐보자는 신선한 바람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명절 때 차례는 반드시 지내야하는 것인지, 제사상에 전을 꼭 올려야하는지, 과일의 위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인이 된 조상이 자손에게 대화하는 형식의 표현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고대 유교 경전 중 다양한 일상생활 속 예절을 다룬 ‘예기’를 기본으로 제사 등 예법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지역마다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게 예를 치러오면서 나름대로 정형화가 되어 꼭 지켜야하는 가풍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와 지금은 자연적 여건과 사회적 환경 등 생활 주변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의식이 달라졌고, 생활이 달라졌다. 먹는 음식과 취향도 달라졌다. 유독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정의 일은 주부가 해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 같은 것이라고 할까.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진 만큼 시대와 정서에 맞는 새로운 예법이 필요한 때다. 가족들 간의 합의와 조정도 따라야 한다. 지나친 형식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많은 가짓수보다는 정성과 작은 일에도 나눔의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함께 해야 된다는 것이다.

명절증후군을 멀리하려면, 무엇보다 비교의 잣대부터 내려놓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인이 희생을 하거나 손해를 본다는 불공평한 인식을 초월하는 편안한 마음가짐과 서로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도 중요하다.

시대에 알맞은 전통을 지키며 할 일은 하고, 여가시간을 취미활동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감상 또는 친구를 만나거나 가까운 자연을 벗 삼아 걷기라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는 것은 어떨까.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여러 사람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고유의 명절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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