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사로잡는 다육소녀의 몽환적 매력
시선 사로잡는 다육소녀의 몽환적 매력
  • 황인옥
  • 승인 2018.10.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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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은 작가 15번째 개인전
28일까지 키다리갤러리서
10년간의 자아탐색 과정 통해
초월적 상태 인간상 형상화
한지에 초현실적 신비 담아
첫 에세이 도록도 함께 선봬
Recycle_Eastern watercolor
서승은 작 ‘Recycle’. 키다리갤러리 제공

전시장이 ‘소녀시대’를 방불케 했다. 30대 중반을 넘겼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청초한 작가 서승은(37)이 긴 생머리에 원피스 차림으로 관람객을 반겼고, 그녀를 닮은 다육소녀가 작품마다 형형했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다육소녀’ 연작은 소녀와 다육식물의 결합이다. 신비스러우면서도 초월적인 소녀가 다육식물과 산양, 꿀벌 등의 곤충들과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인간이 상상하는 이상세계의 평화가 그 안에 깃들어 있다.

“다육소녀는 순수한 상태의 인간, 즉 상처받지 않는 초월적 인간을 의미해요.”

서승은은 극단적인 은둔형 외톨이였다. 5년간 스스로를 작업실에 가두고 사람이라고는 만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설가 이외수처럼 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아침부터 밤까지 스스로를 가두고 그림만 그렸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그녀를 가뒀고, 미술판은 가녀린 그녀가 다가가기에 상처투성이였다.

‘다육소녀’는 5년간 은둔한 결과다. 그리고 다육소녀가 들고 있는 바구니 속 황금알은 ‘자아’에 대한 은유다. “내 작업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평생 황금알을 찾아도 얻기 어려운데 자아 찾기 역시 마찬가지죠. 부단한 노력으로 찾아가야죠.”

자아찾기 10여년만에 서승은의 다육소녀가 달라졌다. 심산유곡의 호랑이 가족, 청정계곡의 황금잉어, 달콤함을 머금은 꿀벌, 힘이 넘치는 코뿔소 등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다육소녀와 함께 등장한다. 다육소녀들이 보호하는 지구본도 눈에 띈다. 탐구의 주제가 자아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지구보호 등의 공동체로 확장됐다.

변화의 계기는 있었다. 북부흰코뿔소가 멸종위기라는 뉴스를 보고 경각심이 들었던 것. 이번 전시 제목이 ‘변화(CHANGE)’인 이유다. “북부흰코뿔소가 지구에 3마리밖에 없다는 뉴스를 보고 세상을 둘러보게 됐어요. 자연의 자생력이 인간의 지구훼손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죠. 지구를 살려야겠다는 각성이 들었고, 화폭에 그런 생각을 담았어요.”

한국화인지 서양화인지 모호하다. 현실세계인지 가상세계인지도 불분명하다. 그저 초현실에 기반한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할 뿐. 한지와 작가의 상상력, 그리고 동서양 물감의 혼합이 그려낸 심상들이다. 한지와 동양물감의 흡수력에 서양물감의 집중도가 더해진 결과다. 여기에 신의 한수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됐다.

“자아찾기에 집중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형상들이 툭툭 튀어 올랐어요. 지구환경을 위한 인류의 변화로 주제가 옮겨가면서 상상력과 의도성이 혼재되긴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상상력과 동서양 물성의 만남이 신비스러움으로 인도하는 것 같아요.”

다육소녀의 표정에도 변화가 거듭됐다. 초기의 어둡고 슬펐던 얼굴에 이제는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그녀가 그림 중독증에 걸렸던 과거를 고백했다. “저의 힘든 상황을 다육소녀에 오롯이 투영했고, 다육소녀의 얼굴은 늘 슬펐죠. 당시는 고통스러운 행복상태였다고 할까요?”

상처를 담아낼 대상을 가졌다는 것은 행복이다. 오직 그 대상에만 집중하면 될 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도적 행복 상태가 이상하게도 진짜 행복으로 채워져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육소녀를 그리면서 최고의 치유제가 됐나 봐요. 다육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죠. 이제는 제가 받았던 치유력을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들과 나누고 싶어요.”

100호 작품 3점을 포함해 총 14점의 최신작과 작가의 첫 에세이 도록도 함께 선보이는 15번째 개인전은 키다리갤러리에서 28일까지. 070-7566-599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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