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사사로운 편지는 뜯지도 않았다
<대구논단>사사로운 편지는 뜯지도 않았다
  • 승인 2010.02.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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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태어난 배경에는 여러 인물이 있지만 충청도 홍주목사 유의(柳誼)도 그 중의 하나였다. `목민심서’에는 다음과 같은 유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약용이 천주교 활동에 관여하였다 하여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을 때의 일이다. 금정은 충청도 홍주 지역으로 당시 홍주목사가 바로 유의였다. 유의는 영조 10년(1734)에 태어나 영조 45년(1769) 별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조 2년(1778)에 정언, 지평 등을 거쳐 홍문관에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797년에는 홍주목사로 나갔을 때에 백성들의 세(稅) 부담이 과중하여 살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조정에 건의하여 탕감하였다. 조정에서는 신중한 언행으로 오랜 동안 벼슬살이를 하였고, 목민관으로 나가서는 검소함과 위엄으로 고을을 평안하게 하였던 것이다.

유의는 매우 검소하여 한 고을을 다스리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찢어진 갓과 성근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이부자리도 남루하여 요나 베개도 없었다. 생활이 이러하니 저절로 위엄이 서게 되고 형벌을 내리지 않아도 고을이 다스려졌다고 한다. 바깥을 순행할 때에도 밥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네를 만나면 그 밥보자기를 풀어 반찬이 어떠한 지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반찬이 빈약한 것을 보니 좀 더 부지런해야 하겠네. 산에서 나물을 뜯더라도 배불리 먹어야 일을 제대로 할 것이 아닌가?”“자네 집 반찬은 지나치게 많고 화려하여 흡사 주상 전하의 밥상과도 같으니 백성 된 몸으로 어찌 그리 낭비가 심한가?”

이렇듯 세세하게 신경을 쓰며 검소함과 동시에 근면함을 강조하니 백성들이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의가 단순히 검소함만으로 뛰어난 목민관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 매우 철저하여 사소한 청탁도 받지 않았고,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정약용이 유의에게 말했다.

“나라의 일에 있어 단 하나의 어그러짐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유의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나를 홍주의 목민관으로 임명하신 뜻은, 홍주의 백성을 나에게 맡겨 그들을 구휼하고 비호하도록 하신 것이네.

조정에 있는 고관의 부탁이 비록 무겁기는 하나 어찌 임금의 명령보다 높겠는가. 만일 내가 편파적으로 한 사람만 찾아보고 특혜를 준다면 이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한 사람의 사사로운 명령을 받드는 것이니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는가.”

정약용이 이를 듣고 감복해서 말을 잇지 못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정약용이 편지를 올려 공무를 의논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후에 유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답장을 주지 않으신 것입니까?”
유의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홍주의 목사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편지를 뜯어 본 적이 없네.” 그리고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편지통을 가져와 정약용에게 보이도록 하였다. 정약용이 편지통을 쏟으니 과연 모든 편지가 하나도 개봉되지 않은 상태로 들어있었다. 잘 살펴보니 모두가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보낸 것이었다.

“이러한 편지야 물론 뜯어보지 않는다지만 저의 편지는 공무와 관계된 것인데 어찌 뜯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공문을 보내면 될 것이지, 왜 사사로이 편지로 보낸단 말인가?” “그 일이 비밀에 속한 것이기에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의가 정약용을 나무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비밀히 공문으로 보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정약용도 할 말을 잊고 말았다고 한다. 유의가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와 같았으니 오늘날까지도 청백리로 존경을 받는다 하겠다. 위의 이야기는 국가청렴위원회에서 펴낸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에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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