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우나 희망적인 풀 한 포기… 닷 자갈마당 스페이스, 장준석展
위태로우나 희망적인 풀 한 포기… 닷 자갈마당 스페이스, 장준석展
  • 황인옥
  • 승인 2018.10.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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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자갈마당이란 공간에
전시공간은 생명처럼 다가와”
창문 스테인글라스 작품 설치
소통 향한 희망적 메시지 담아
장준석-볕
장준석 作 ‘볕’, 94x101cm, Stained glass, 2018.

방과 복도 사이에 유리벽이 설치됐고, 유리벽 안과 밖의 바닥에 서로 등지는 형상으로 ‘WELCOME(환영한다)’이라는 텍스트 기호가 영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환영한다’라는 텍스트가 반짝거리지만 선뜻 유리벽 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견고한 유리벽이 만든 심리적 단절 때문. 자갈마당 성매매업소를 리모델링한 .(닷) 자갈마당 스페이스(이하 .(닷) 자갈마당)에 설치한 작품 ‘유리의 방’이다. “도심 속 섬같은 자갈마당과 자갈마당 사이에서 섬처럼 떠도는 전시공간인 .(닷) 자갈마당에 대한 첫인상을 표현했어요.” 작가 장준석(사진)의 설명이다.

‘WELCOME’이 자갈마당에 대한 첫인상을 표현했다면 작품 ‘볕’은 자갈마당과 전시공간을 충분히 호흡한 후의 감상에 해당된다. 작품은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창에 설치한 두 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이를 마주하는 관람객의 행위로 구성된다. 작품에서 ‘볕’은 자갈마당과 전시공간, 그리고 관람객과의 경계없는 소통을 위한 매개로 기능한다. 단절을 표현한 첫인상과 달리 이 작품에는 소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따스한 볕을 매개로 이질적인 것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기를 바랬어요.”

속칭 ‘자갈마당’은 대구 도심가에 있는 성매매집결지다. 홍등가라는 흑역사를 100여년동안 이어오다 2015년 정부의 집창촌 폐쇄 결정과 대구시의 올해 안 민간주도 개발이 확정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자갈마당의 일원이었던 성매매 업소를 리모델링한 전시장에서의 전시를 의뢰받자 장준석의 뇌리는 복잡해졌다. 성급한 도시개발과 뒤틀린 성문화 등 인간의 왜곡된 욕망이 얽혀있는 자갈마당의 간단치 않은 흑역사에 접근하는 것에 중압감을 느꼈다.

“자갈마당을 중심 권력 위에서 바라보는 알량한 동정이나 오해의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지워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갔어요.” 현대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자갈마당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던 것. 하지만 그는 .(닷) 자갈마당에 자갈마당의 흑역사를 투영하며 공간 분석을 시도했다. 그때 떠오른 이미지가 ‘한 포기 풀’이다. “자갈마당 가운데 있는 아트스페이스가 척박한 땅 위에서 생명력을 키워가는 한 포기의 풀 같았어요.”

척박한 땅 위의 풀은 위태롭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살아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메말라 사라지거나, 생명을 보존하고 번식해 사막화를 막거나 둘 중 하나다. 작가는 자갈마당과 ,(닷) 자갈마당을 두 가지 측면에서 풀어놨다. “사막화된 자갈마당을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고, .(닷) 자갈마당을 생명을 지속하는 풀로 해석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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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 초대전이 .(닷) 자갈마당 스페이스에서 내년 3월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장준석 제공

장준석은 직접적인 형상 대신 텍스트 기호로 메시지를 구현한다. 다양한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텍스트 기호로 압축해 드러낸다. 지금까지 ‘꽃’이나 ‘숲’ 등의 텍스트 기호로 실재와 상징화된 관념 사이에 존재하는 허무에 주목하고, 진정한 실체를 향한 탐구를 계속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자갈마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새롭게 ‘별’과 ‘WELCOM’이라는 텍스트 기호를 사용했다.

텍스트 기호를 시각적인 묘사보다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체계의 산물로 이해한다면 텍스트 기호를 사용한 작가의 작품들이 관념으로 흐를 개연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관념보다 감정선이다. 이는 장준석의 탁월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그는 관념적인 텍스트 기호를 감정적인 조형언어로 치환하는데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관념성의 상징인 텍스트를 통해 실재와 관념사이의 허무를 관찰하고, 그 가운데 진정한 실체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죠.”

이번 전시에 전작인 ‘꽃’ 텍스트 기호를 활용한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작품 ‘꽃을 밟다’다. 작품은 텍스트 기호 ‘꽃’을 바닥에 설치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사회 형성 과정에서 전체를 위한 알고리즘인 규율이나 법칙을 만들지만 그로인해 소외되거나 비켜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을 ‘꽃’이라는 텍스트 기호로 구현했다.

또 다른 작품 ‘꽃(FantasilessⅡ)’은 텍스트 기호인 ‘꽃’에 작가가 물을 주는 퍼포먼스를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작품 ‘244 텃밭’에는 작가 어머니의 텃밭을 재현했다.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물을 주며 보살피도록 제작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중의적이라는 것. “세 작품 모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순환 또는 소멸할 수 있다고 봐요. 자갈마당의 미래도 다르지 않죠.” 정희욱과 함께 하는 장준석 전시는 내년 3월 17일까지. 053-661-233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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