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땅콩
슈퍼 땅콩
  • 승인 2018.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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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 결과가 좋아야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도 사라진다. 5월에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 가서 땅콩을 심었다. 흙을 돋우어 비닐을 깔고 굵은 땅콩 두 알을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땅밑으로 푹 넣어 심었다. 딱딱하게 마른 땅콩이 과연 싹이 틀까 싶다. 땅콩은 처음 심어보았다.

더운 6월이 되었을 때 싹이 난 땅콩이 무성히 잎을 피워냈다. 단단한 알 어딘가에 생명이 있었는가 싶다. 삶을 향한 땅콩의 몸부림이 농사 짓는 사람에게도 희망을 준다. 살아야겠다. 싱싱하게 푸르러야겠다. 뻗어나가야겠다. 강인한 생명의 방향성을 느낀다.

들깨밭도 푸르고, 고추도 대롱대롱 달려있지만, 땅콩은 여전히 잎만 무성하다. 땅 위에 있는 농작물은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땅콩도 노란 꽃이 핀다. 땅콩꽃이 한창일 때 뾰족하게 긴 코끼리코 같은 줄기가 뿌리가 있는 땅으로 내리꽂는다. 땅콩잎은 해가 지면 손바닥 마주댄 듯이 붙이고 오그라들었다. 땅위의 변화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도 성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농작물이 열매를 맺는 것이 눈으로 보여 계속 눈길을 주게 되는 것과 달리 땅콩은 결과물이 보이지 않아 눈길이 가지 않는다. 고추나 상추, 들깨잎은 틈틈이 따서 반찬으로 먹기도 하는데 땅콩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말라죽지 않고 버텨낸 농작물을 수확하는 가을이 되었다. 단풍든 산을 배경으로 주말에 밭에 쭈그러 앉아 땅콩을 캐기로 했다. 오랫동안 침묵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팔힘이 센 남편이 땅콩줄기를 양 손으로 잡고 힘껏 쑥 뽑았다. 땅콩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홍희는 탄성을 질렀다. 이토록 굵은 땅콩을 본 적이 없었다. 단풍구경 가고 싶은 생각도 잊고 땅콩을 따서 플라스틱 사과상자에 담았다. 한 포기에 한 되는 족히 될 정도였다. 사과 한 상자가 금세 가득 찼다. 남편은 기쁨에 웃음이 만발했다. ‘청송’답게 맑게 흐르는 개울물에 흙을 씻었다. 족히 여섯 상자는 되었다. 지나가던 동네이웃이 땅콩알이 굵다며 ‘슈퍼땅콩’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작은 시누이한테 씨를 얻었기에 종자품종은 몰랐다. 가족들이 다 먹기에는 많은 양이라 기쁨과 처분을 고민하면서 수확했다. 남편은 직장동료들과 나눠먹으려고 출근했다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미 땅콩주문을 받아둔 사람이 있는데 그의 땅콩이 알이 좋지 않아 팔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팔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운이 따르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다음 주 시어머니와 홍희는 굵은 땅콩만 골라 수북히 두 되씩 4말을 담았다. 남편은 땅콩을 가져가서 돈으로 받아왔다. 땅콩도 나눠먹고 갈치 한 상자도 사서 형제들과 나눠먹었다. 남편은 주말마다 대구에서 청송가서 첫 땅콩수확물을 얻으니 좋아했다.

과정만큼 결과가 중요하고, 결과를 얻기까지 과정도 중요하고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땅콩은 결과를 얻기까지 그 과정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았지만 ‘슈퍼땅콩’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 날 그 날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묵묵히 하루하루 성장해 슈퍼땅콩이 되었다. 결과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게 하루하루 성장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오늘 당장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늘 조급해하고 닥달하는 홍희는 아이들이 슈퍼땅콩이 될 수 있도록 조급하게 결과물을 보여달라고 독촉하지 말고 뜨거운 여름 태양을 견디고, 비를 견디고 서서히 성장하도록 조용히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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