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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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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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참 쉬운 일인데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보다 사람 앞에 다른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정치적 이념이 사람보다 앞섰고, 또 어떤 곳에서는 종교가 사람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로 그를 평가하고,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사람을 대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믿는 신(神)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 제일 앞자리로 나와서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 무엇’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74세 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 나이 몇 살의 나로 보거나, 어떤 일을 하는 나로서가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만나는 나의 벗이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현생에서는 내가 먼저 태어나 나이가 많지만 전생에서는 당신이 나의 어른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윤회(輪廻)를 믿지 않는 나지만 그가 내게 전한 말의 뜻은 충분히 내게 전달되었다. 생각의 주제가 비슷했고, 생각의 관심들이 서로 비슷했기에 나이를 초월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한국의 문화 중에 ‘나이 문화’란 것이 있다. 사람이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꼭 중요하게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무슨 일이든 하다가 조금이라도 뒤틀어지는 일이라도 있으면 “너~몇 살이야?” “네만 한 아들이 있어. 어디서 까불고 있어”이런 식으로 나이부터 들먹인다.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는 중요하지만 너무 나이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먹게 되는 것이 나이다. 만약 우리가 살아온 삶 가운데 내세울 것이 나이밖에 없다면 참 부끄러울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동호회나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정도 이야기가 잘 진행되다가도 나이가 공개되면 나이에 갇혀 서로를 대하게 된다. 나이가 공개되고 서열이 정해지면 상대방도 그렇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나의 나이에 맞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본능처럼 그것을 알고 있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나이보다는 사람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칠십이면 어떻고, 이십이면 어떤가? 모두 오늘이란 시간 속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인데.

호박에 줄긋는다고 호박이 수박 되는 것은 아니다. 호박은 호박이고 수박은 수박이다. 겉에 걸친 장신구나 그 사람의 직업이 그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못난 사람들은 그런 장신구와 자신의 직업을 자신보다 앞에 세운다. “내가 누군지 알아?” 좋은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달라진다. 수박에 줄그었다고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힘을 가졌을 때 나오는 법이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사회적으로 맡겨진 역할이 많아졌다. 그래서 교수다. 이사다. 소장이다. 위원이다. 수많은 직함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 직함이 내가 아니다. 그 직함은 그야말로 나의 역할이다. 그 역할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나보다 우선할 수 없는 나를 뒤 따르는 수식어이다. 그래서 본인은 강의 중 나의 이름을 가지고 삼행시로 나를 소개한다. 사람들이 나의 이름에 한자 한자 운을 띄워주면 나는 “김, 김밥 한 줄, 순, 순대 한 접시, 호, 호빵 다섯 개,”를 이야기하며 뒤이어 이렇게 정리를 한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두 먹으면 배가 부르시겠죠? 그렇듯 김순호를 만나면 생각이 배불러지고, 마음이 배불러지고, 인생이 배불러집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기대되는 사람, 김순호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 박수가 쏟아진다. 나는 내 이름을 가지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좋고, 사람들 역시 나를 역할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람으로 봐줄 때가 기분 좋다.

사람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종교보다, 정치적 신념보다, 입고 있는 옷보다, 타고 다니는 차보다, 그의 직업보다 사람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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