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에서 느낀 사회주의 의료의 단편
이르쿠츠크에서 느낀 사회주의 의료의 단편
  • 승인 2018.11.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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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이르쿠츠크는 유럽을 축소해서 옮겨 놓은 듯한 러시아의 고풍스런 도시이다. 황량한 시베리아의 외진 시골에 불과했으나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청년 장교(데카브리스트 : 12월의 동지)들이 이곳으로 유배가게 되면서부터 예술과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10월 중순,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필자는 메디시티협의회 산하 의료관광산업위원회의 일원으로 나눔의료를 다녀왔다.

대구의 높은 의료 수준과 발달한 의료상품을 홍보하여 대구로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고 대구에서 생산된 상품 판촉을 돕는 일종의 마케팅 활동인 셈이다. 이르쿠츠크에 메디시티 상설 홍보센터를 오픈했고 현지의 유력 에이전시들과 MOU를 체결하였으며,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우리 병원을 비롯한 6개 의료기관의 의료진과,대구시청, 메디시티대구 협의회, 대구의료관광 진흥원의 직원들이 메디시티 대구를 홍보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지의 병원을 방문하는 일정이 들어 있어 러시아 의료를 직접 관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근무 의사 140명에 일일 외래 환자가 1,000여명이 넘고 최신 의료 장비를 갖추고 있어 푸틴 대통령까지 방문한 적이 있다며 현지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검사 진단 전문 병원이었다. 보유한 의료 장비와 시설은 국내 어느 병원 못지 않았고 병원을 소개하는 병원장의 말과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보다 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에 양해를 구하고 CT실과 MR실에 들어가서 검사 과정을 견학하였다. 의료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니 사회주의 의료의 실상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내원하는 환자가 많으면 많이, 적으면 적게 보는게 아니라 정부에서 검사해야 할 환자의 숫자가 분기별로 정해져 내려오면 그만큼만 진료한다고 했다. 그럼 할당된 환자를 다 진료하고 나면 그 이후에 내원한 환자는? 정답은 다음 분기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였다.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고 나면 그 다음은 진료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병원비가 싸면 뭐하겠나,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데….CT실에서도 황당한 일은 계속되었다. CT실 담당이라는 의사에게 하루 CT 검사 건수를 물었더니 1시간에 4명만 촬영한다고 했다. 척추CT처럼 간단한 촬영도 있지만 심장CT처럼 영상을 재조합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여 오래 걸리는 검사도 있어서 여유있게 정했다고 하는데, 심장CT가 그렇게 흔한 검사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너무 여유 넘치는 스케줄이 된다. 실제로 CT실에서 약 30분정도 머물면서 이야기하는 동안 경추CT 환자 한명을 검사대에 눕혀놓고 베게를 베고 촬영하느냐 마느냐하는 사소한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CT실을 나올 때까지 그 환자의 검사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의료진 중 누구도 급하지 않았으며, 정해진 분량을 넘겨 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병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와 충분한의료진을 갖추고 있었으나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의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진료일에는 촬영한 사진을 가져와서 자국의 의료진을 믿지 못하겠으니 다시 보고 진단해 달라는 현지인들이 줄을 섰다. 그들은 하나같이 필요하다면 대구로 가서 치료받겠다 했다. 국민들은 자국의 의사를 믿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의료계의 핫이슈인 ‘문재인 케어’정책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복지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재인 케어’의 단순히 의료비 부담 완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의료 수가를 정부가 결정하고 진료량까지 심사 평가를 통해 통제하겠다는, 사회주의적 의료에 그 지향점이 있기에 의료계가 결사 반대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의료수가통제 등 사회주의적인 요소와 선택 진료제나 비급여제도 등 자유시장 논리가 혼합된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시장경제 부분을 제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의료제도에서 자유시장 논리를 없애고 사회주의적 요소만 강화한다면, 의사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거나 발전시킬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회주의 의료의 성격이 짙어질수록 경쟁하고 성취하는 노력과 열정이 보상 받을 수 없고, 결국 의료수준은 정체되고 우수한 의료인력은 한국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영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중에 자국에 남아 있는 의사는 투철한 애국자이거나 바보거나 의무근무 연한을 덜 채운 의사뿐이라는 영국인들의 자조섞인 한탄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주의적 의료제도하에서의 의료의 하향 평준화는 러시아를 비롯 여러 나라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병폐를 이미 체험한 국가들은 시장 논리를 도입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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