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엔 밥이 맛있어야 한다
밥집엔 밥이 맛있어야 한다
  • 승인 2018.11.1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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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얼마 전, 오전 수업을 마친 문우들과 함께 노란 은행잎과 플라타너스 잎들이 거리마다 첨탑으로 쌓여가는 늦가을 풍경 속을 걸어 단골 식당을 찾았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가게라 그런지 식당 안은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허기를 채우려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바쁘고 복잡한 와중에도 단골이라는 이유로 우리들이 앉을 자리와 메뉴는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푸짐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밥을 떠 입으로 가져가다말고 숟가락을 놓아 버렸다. 밥에선 쉰내가 났다.

곁에 앉은 사람들도 슬금슬금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는 일제히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아는 앞면에 그냥 먹자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사람, 그래도 단골에게조차 이런 밥을 주었으니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 서로 실랑이를 하다 결국 주인장을 불러 귀띔이라도 해 주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인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냄새 한 번 맡아 보시라 했더니 펄쩍 뛴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잘못 되었을 거라고 하더니 밥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방 아주머니가 토끼 눈을 하고 뛰어나오시더니 밥그릇을 몇 번이나 코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맡더니 말을 잇지 못하고 선채로 그만 눈물을 뚝뚝 흘리신다. ‘죄송하다’며 몇 번이나 머리 숙여 사과를 하고는 주방으로 겨우 돌아갔으나 우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한 끼를 대충 때웠다.

식당 문을 나서다말고 아무래도 아주머니가 마음이 쓰였다. 차려주는 밥상만 받아본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겠다 싶어서 문우들을 먼저 가시라고 하고 다시 주방 안을 들여다봤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훌쩍이며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다가가서 손을 잡으며 ‘죄송합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더 잘하려다보면 오히려 더 큰 실수를 하게 되더라고요.’ 했더니 ‘찰진 밥을 해 드리고 싶어 씻어서 불린 쌀을 냉장고에 보관했었는데, 냉장고를 너무 믿은 제가 어리석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하신다.

요즘 세상이야 전기밥솥이 있어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진밥이든 된밥이든 누룽지든 원하는 대로 밥을 지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연탄불이나 곤로 혹은 가마솥 앞에 지키고 서서 냄비 밥을 했었다. 고슬한 밥을 짓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던 때였다.

밥 한 끼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그릇의 밥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보약이 될 수도, 죽일 수 있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허기진 뱃속을 달래주는 일이 보시하는 마음이라면 밥 짓는 일이야 말로 복 쌓는 일이다. 만고의 진리는 ‘밥집엔 밥이 맛있어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밥보시를 행한 여인에게 겨자씨만한 씨앗이 큰 나무가 되어 수만 섬의 열매를 맺는 것에 ‘하나를 심으면 열이 나고, 열을 심으면 백이 생기며, 백을 심으면 천이 생길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진정한 밥보시에는 몇 가지 조건을 두었다고 한다.

“우선 배고픈 이와 음식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에게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 해야 하고, 먹다 남은 것이나 버리기는 아까워 주는 음식이어서도 안 되며 그 모든 것들을 행함에 있어 상대가 알게 해서 눈칫밥을 먹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까지 챙겨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배고픔만큼 서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굶어 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슬픔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옛 속담에 배고픈 서러움은 3대를 간다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사는 즐거움이란 빼 놓을 수없는 삶의 향기가 아닐까.

한 공기의 밥으로 행복하고 불행해지는 우리의 삶. 집이든 식당이든 밥집에는 반찬보다 밥이 맛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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