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의 불구(不具)
염치(廉恥)의 불구(不具)
  • 승인 2018.11.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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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체면은 남들을 대할 때의 떳떳한 마음이나 면(面)을 뜻한다. 사실 그만큼 당당한 이는 흔하지 않다. ‘체면치레’가 늘어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치레’는 겉을 꾸미는 일을 더할 때 쓰는 접미사다. 인사치레는 형식적이고 건성으로 하는 인사를 말한다. 이렇듯 체면이라는 좋은 뜻에 치레라는 접사를 만나 형편없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청렴결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지인이 속된 행동을 하면, 그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그래서 전업 정치인들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하고, 결별을 하더라도 그 끝이 공정하고 명명백백해야 한다. 정의로운 정치를 선언하고 이를 잘 실행하고 있다고 믿었던 정치인이 과거의 부정한 일로 인해서 곤욕을 치르는가 하면, 과거에 야당인사로 존경을 받던 이가 변절하여 부정청탁과 맞물려 낙마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흔히 사리(事理)나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경우(境遇)라고 한다. 그런 ‘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식당에서 침을 바닥에 뱉는 건 기본이고, 끊임없는 욕설들이 오가는 경우도 있다. 다들 얼굴을 찌푸리지만 굳이 시비를 가릴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경우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사과할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반성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도 된다. 반성을 하지 않는데 사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 궁금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잘못된 언행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단지 ‘내’가 한 일이기 때문에 반성하기 싫을 뿐이다. 그래서 끝까지 우겨댈 수밖에 없다. 이겨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은 진부한 일이다. 정치판에서 소모전을 벌이는 것도 어떻게 보면 경우 없는 정치꾼들이 많은 탓이다. 그뿐인가. 염치(廉恥)없는 정치인들도 부지기수다. 염치가 무엇인가. 체면을 차릴 줄 아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부끄러움이 없다.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들이 체면치레조차도 하지 않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무리’들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회를 일컬어 ‘패거리 여의도 정치꾼’들의 성지로 비하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조차 모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면책특권을 한껏 누리며 서로가 하나 되는 묘한 결집력을 가지는 철의 얼굴들을, 우리 손으로 선택한 것이니 이 또한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을 부탁하거나,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내야만 할 때 ‘염치(廉恥) 불고(不顧)하고~’라고 운을 떼는 것이 일반적이다. ‘염치 불구하고’라고 잘못 쓰는 사례들도 있는데, 불고(不顧)가 맞다. ‘불고’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염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일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염치가 불구(不具)한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불구도 영 틀린 말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아는 사람이 식당을 개업했다고 해서 찾아가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동행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공짜로 서비스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차라리 그런 인사치레를 할 거면 그런 사람은 그 식당에 가주지 않는 것이 돕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들은 한 순간에 그의 수하(手下)에 들어간다. “ooo를 내가 잘 아는데, 걔가~”로 시작하는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익숙한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의 이름에 호기심을 가졌던 청자(聽者)들도 어느 순간 의심을 갖게 한다. 어떤 위치에 있건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각고의 노력을 해서 그 자리에까지 올랐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설사 본인이 잘 알고 지낸다하더라도 함부로 폄훼하거나, 본인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대상처럼 표현하는 것은 경우가 없는 일이다. 잘 아는 사람일수록 그를 위해서 말 한마디라도 신중해져야 하는 것이 도리니까 말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요즘 책을 보지 않는다고는 하나, 사계절을 기준으로 그나마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독서량이 높은 건 사실이다. 얼마 전 기사에도 보니 몇몇 작가들의 시집들이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독서를 하는 것은, 사색할 시간을 따로 갖기 힘든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비타민을 섭취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독서를 통해서 경우와 염치를 갖추고,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 보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TV에 나오는 오락프로그램에 자막들이 부쩍 늘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TV를 여럿이 함께 보다가, 이들 중 하나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모두가 박장대소를 할 수 있었다. 나 홀로 가정이 늘어나면서 형형색색의 자막이 이를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화를 할 대상과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아서, 시집 한권을 펼치면 한줌의 바람도 교감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더불어 살아가야할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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