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어 내는 인생
견디어 내는 인생
  • 승인 2018.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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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며칠 전 서울의 한 모임에서 30년 만에 한 선배를 만났다. 그 분은 학생이었던 내게 처음으로 신앙을 소개해 주신 분이다. 30년 동안 서로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가 우연하게 그 모임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각각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았고 그 분은 이미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호텔의 한 방에서 무릎을 같이하고 앉아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또 결혼은 어떻게 하였고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서로 나누며 몇 시간을 함께 했다.

그는 감기로 기침하는 나를 위해 물을 끓여다 주고 편하게 앉을 것을 권면하는 등 예전의 선배로서의 사랑을 여전히 보여 주었다. 그의 마음, 삶에 대한 그의 신실한 태도, 말하는 습관까지 그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처럼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나도 옛적에 철없이 굴던 새까만 후배가 아니라 어느 듯 사회에서 작은 일이나마 제 역할이 분명한 중년으로 그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참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30년의 시간동안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 흔적이 우리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참 잘 견디어 내었네.’ 허물없는 우리 사이인지라 마음에 있는 것들을 서로 다 나누고 나서 그가 한 말이었다. 그와 나의 삶이 그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음을 공감하며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의 삶도 나의 삶도 그리 녹녹치 않은 것이었다. 그 30년을 어찌 살아 왔을까? 참 쉽지 않은 삶이었는데 그래도 잘 견디며 용케도 살아 왔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형, 나 참 용케 잘 살아 왔지요?’ 웃으며 물었더니 ‘그래. 정말 잘 살아 왔네.’ 선배도 조용한 웃음으로 답해 준다. 형도 고생한 흔적이 좀 나요. 그러기에. 참 쉽지 않더라. 그래도 이렇게 만나 얘기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

다음 날 대구에 내려와 어떤 목사님을 배웅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 교회는 견디어 내는 교회에요. 40년 동안 월세를 감당하며 사라지지 않고 견디어 온 것이 정말 감사해요.’

40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견디어 온 것이 감사하다는 말이 생경스럽게 다가온다. 교회의 규모가 커진 것을 자랑하는 분도 있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여 문을 닫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도 들었지만 ‘견디어 온 것이 감사하다’는 말은 오히려 참신하기도 하였다.

견디어 온 것이 감사하다. 그 말은 며칠 전 만난 그 선배에게서 먼저 들었고 오늘 배웅 나온 목사님에게서 다시 듣게 된 말이었다. 한 번은 공감으로 한번은 참신함으로 다가 온 그 말은 년 말을 맞이하는 내게 작은 의미를 남겼다.

이제 곧 년 말이 다가온다. 올 한 해 나는 무엇을 성취했을까? 한 해 한 해 흘러가는 세월 속에 내 인생은 무엇을 남겼나? 항상 년 말이면 무의식가운데 업적과 성취라는 잣대로 스스로를 옥죄어 왔던 내게 30년 만에 만난 그 선배는 ‘인생은 견디어 내는 것’이라 말한다. 스쳐가 듯 만난 그 목사님은 내게 ‘목회란 견디어 내는 것’, ‘교회는 세파를 견디어 내며 존재하는 것’이라 말해 준다.

한 달 후면 또 다른 나라로 떠날 예정인 그 선배, 다시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 목사님. 다시 만날 기약을 하지 못하는 두 분에게서 잊지 못할 귀중한 조언을 들었다. 이틀을 연속하여 듣게 되는 동일한 음성은 예사롭지 않다. 내게 있어 하나님의 음성은 항상 그렇게 들려 왔다. 골방이라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성경을 통하여 들려주시기도 하고 또 예기치 못한 사람들을 통하여 그렇게 들려오기도 했다.

한 달 여 남은 올 한 해, 갑자기 만나게 된 두 분의 그 말씀을 가지고 남은 시간을 정리해 보려 한다. 엄청난 많은 것들을 성취하지 못했어도 그냥 세월을 견디어 내며 살아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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