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들의 숙사(宿舍)
가축들의 숙사(宿舍)
  • 승인 2018.11.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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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성(性)의 불평등이 얼마나 사회전반에 걸쳐서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남녀평등에 이어 여남평등, 그것도 부족해서 양성(兩性)평등에 이르기까지 성평등의 명칭은 다양하게 변화해왔지만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해당학교에서 재학했던 한 졸업생이 SNS를 통해서 폭로하면서 불편한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고, 현재 재학 중인 후배들이 2차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해서, 오히려 축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보자의 주장에 따르면, 여학생의 방을 남자 사감이 점검을 하는 것은 인권유린에 가깝다는 것인데, 학교 측은 여학생 200명, 남학생이 100명인데 반해, 여자사감은 1명, 남자 사감이 2명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설득력 없는 답변이다. 관리인원이 부족하면 충원을 하거나 대체방안을 강구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학생들의 방을, 성인 남자가 불시에 들이닥치는 행위는 관리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비상식적이라는 소리다.

해당 사감의 언행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가관이다. 밤늦은 시간에 여학생의 방에 불쑥 들어가 침대에 앉아서 빨래통을 엎고 옷장 문을 열게 하면서 ‘나는 너희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동생뻘이다’라는 식으로 본인의 언행을 정당화하려 했다. 당시에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과자나 전자기기를 압수하는 것이 여학생들의 안전과 인권보다 중요하다는 학교 측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학교 여자애들은 얼굴도 안 예쁜데 공부도 못하고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우리 학교 애들은 먹고, 살찌우고, 자는 것 밖에 못한다니까. 완전 가축이다, 가축’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래서 시쳇말로 ‘헐’이라는 것이 나왔나보다. 한 남학생이 여학생들을 줄 세워놓고 성희롱을 한 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을 때도, 진행상황이 궁금해서 찾아온 여학생에게 ‘남학생 하나를 몰아 가냐’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우선 시교육청은 남자 기숙사 사감을 직무에서 배제시키고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자 기숙사는 오래전부터 남성들에게는 관능과 호기심의 성지(聖地)였다. 뭔가 은밀하고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해 온 배경에는 수많은 영화나 잡지 등이 기여한 바도 크다. 금남(禁男)의 집이라는 것 또한 비밀스러움을 더하는 데 한 몫 하겠지만, 이 또한 상상이 만들어낸 괴물에 불과하다. 그런 사적인 공간을 남성들이 침범하고 유린하는 것은 반인류적인 행위다.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만이 전부가 아니다. 여대생 기숙사를 몰래 찾아가서 음란행위를 한 30대도 적발이 된 바 있고, 그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그 뿐인가. 코믹한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바바리맨’은 새롭지도 않다. 워낙 오래전부터 여학교 주변에서, 바바리를 입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드러내는 정신질환자들은 피해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것이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 것이다. 그 또한 남성들만의 이기적이고 관음적인 즐거움일 뿐이다.

기숙사(寄宿舍)는 근대화과정에서, 공장이나 현장에서 생산이나 노동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물론 학교는 다르다. 거주지와 멀어서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생활하게 하는 기숙사는 학생들의 유일한 휴식공간이고 생활공간이다. 사생활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한참 자라나는 학생들이 라면이나 과자 등이 얼마나 먹고 싶겠는가. 그것들을 압수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화기로 인해서 화재가 발생한다든가, 술을 반입해서 학생들의 생활공간이 위해(危害)를 받는 곳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사감을 배치하고 근무하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숙사는 축사(畜舍)가 아니다. 학생들을 가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각 대학에서도 기숙사라는 말 대신 생활관 등으로 순화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이 또한 양성평등처럼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교육기관에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는 교사나 사감들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생활관에서 사감이 해야 할 일은 성희롱이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안전과 휴식을 극대화시키는 일이다.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는데 대한민국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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