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사 니는 그기 궁굼하나?
인제사 니는 그기 궁굼하나?
  • 승인 2018.11.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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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문현숙(시인)

 

늦가을, 저녁이 한창 무르익을 시간이 다 되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누군가 애타게 나를 부르는 사이렌 소리 같았다. 엄마였다. 저녁밥을 지으려던 참이라 벨이 한참을 울리고 난 후, 거의 끊어질 무렵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입 한 번 떼어놓기도 전 엄마는 대뜸 그러신다.
 

 

“하이고 니가 딸 맞나.”

“살아는 있나? 썩을 년!”

“…….”

한참을 듣고만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입을 뗐다.

“엄만 어딘데. 다 늦은 저녁에.”

“…….”

무심하게 내 뱉은 나의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인제사 니는 그기 궁굼하나?”

“두류공원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다 와! 집안이나 집밖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노.”

“…….”

엄마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그 낮 동안 난, 내가 낳은 딸내미랑 요즘 가장 뜨겁다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있었다.

팔순이 다 된 엄마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거였다. 젊은 시절, 설거지를 할 때나 밥을 풀 때, 청소를 하실 때마다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흥얼거리는 것으로 엄마는 타는 속을 풀었었다. 그만큼 노래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요사이 일주일에 두 번 씩 요양원으로 ‘노래봉사’를 하러 다니신다. 요양원에 들어 계실만도 한 연세에 색동저고리 곱게 차려 입으시고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1부 2부로 나눠 2곡 씩, 하루 총 4곡의 노래를 불러드린다. 그러고 나면 진이 다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고 하신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우짜겠노”

“앉은자리가 꽃자리가 아니라 묏자리가 될 낀데 내사 마 …….”

요즘 들어 엄마는 평소 안하던 소리까지 불쑥, 한 번 씩 내 뱉곤 하셨다.

“니는 맨날 글만 파먹고도 사나”

“…….”

“니도 내 나이 돼 바라. 내가 인지 살믄 얼마나 더 살겠노.”

생각해보니 엄마를 뵌 지가 추석 무렵이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

집으로 들어오기 전, 딸내미는 항상 카톡이나 전화부터 해서 내가 앉은 자릴 묻곤 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 와 불을 켜는 것도, 더군다나 내가 없는 집에는 들어오기 싫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었다. 되돌아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나를 잊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통화를 하는 내내 지켜보고 있던 딸내미가 그런다.

“할머니한테 좀 잘해라 엄마.”

“엄마가 할머니한테 하는 것 보고 나도 그대로 할끼데이”

“…….”

서른이 다 된 딸아이는 언제부턴가, 책으로 둘러싸인 그 어둑한 공간의 적막 속에 들앉아 글만 파먹고 사는 내가 안쓰러워 보인다며 일주일 중 하루, 금요일을 ‘엄마와 놀아주는 날’, ‘금요데이’로 정해 두었다. 그날 하루만은 모든 약속들을 접고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주고 있다. 시집가고 나면 어려울 것 같다며, 가까이 있을 때, 적금 붓듯 사랑도 쟁여놔야 한다며 영화도 보고 금요일마다 서는 ‘금요 장터’로 맛집으로 다니며 놀아주고 있다.

때로 가을이 쓸쓸한 것은 겨울의 전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이 따뜻하면 밖이 견딜 만 한 것처럼. 보들레르의 시 ‘가을의 노래’ 한 구를 되뇌어 본다. “우리 곧 싸늘한 어둠 속에 잠기리. 안녕, 너무도 짧았던 우리들 여름의 생생한 광휘여!” 해질 무렵, 까치밥을 매단 감나무가 어둠속에서 허기져 지친 새들을 기다리고 서 있다. 어둠이 스며든 방 한 구석 타인처럼, 덩그러니 홀로 들앉아 있을 엄마가 그 감나무 가지 끝에 걸려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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