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쪼다’
행복한 ‘쪼다’
  • 승인 2018.11.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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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모르는 상대로부터 전화가 오거나 문자메시지가 하나둘 도착하고 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주간지나 낯선 사람의 책이 우편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소식지는 첫 페이지부터 현 회장단의 지켜지지 못한 공약을 비판하는가 하면, 특정 인물의 업적이나 거창한 사업계획을 홍보하는 내용 일색이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가까운 시기에 임기가 도래하는 기관의 선거철이 다가온 모양이다.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이름 석 자를 기억해 달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전화를 받고 나면, 볼 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처럼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다. 어찌하여 상대방을 비방하고 깎아내려야 자신이 올라갈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시는지. 당당하지 못한 모습에, 그 이름 석 자만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하긴 욕하고 깎아내릴 일이 충분하기에 그런 현상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은 부정과 비리와 탈·불법 행위 등으로 손가락질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역설적으로 그런 행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지도층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런 시기에 스스로 ‘쪼다’이기를 자처하는 지인이 계시니,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다.

일전에 있었던 어떤 단체의 행사 때였다. 이동 중인 버스에서 단장으로 추대되신 분의 인사가 있었다. 평소 매우 검소하고, 솔직하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시는 분이다. 흔들리는 버스의 리듬에 맞춰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중 가물가물 들려온 인사말씀은 “나는 쪼다입니다”로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또 무슨 재미있는 말씀을 하려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듣다보니, 그저 흘려버릴 내용은 아닌 것 같아 귀를 쫑긋 일으켜 세웠다.

칠십 평생 살아오면서 큰돈을 벌어보기도 했고, 쫄딱 망해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었으며, 현재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면서 그럭저럭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더불어 당신께서 왜 쪼다인지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앞으로도 “영원한 쪼다로 살고 싶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위장전입을 한 번도 하지 못했으며, 불법투기나 탈세를 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병역기피를 하지 않아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으며, 가방끈이 짧아 논문표절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부정청탁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이 정도면 완전한 쪼다가 아니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쪼다로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와아, 폭죽 같은 공감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쪼다’란 무엇인가?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또는 그런 태도나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볼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자신을 스스로 쪼다라고 칭하는 경우가 결코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친인척 채용비리나 음주운전, 지탄 받아 마땅한 갑질과 성적위조를 비롯한 사학비리 등 다방면의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기회와 요령과 약삭빠른 술수가 난무하는 현장도 비일비재하다.

근년 들어 복지 또는 문화·예술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정부의 혜택이 몰라보게 많아졌다. 하지만 내용을 잘 알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토록 어두운 궁지로 몰고 온 것인지, 경제지표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선진국이 되는 길은 머나먼 훗날의 희망사항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만 욕심 없이 행복한 국민들의 모습은 멀지 않은 이웃나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일을 하면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길거리에서도 발장단을 맞추는 그들이 평화롭게 보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마음이 편안한 사회, 서로 헐뜯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정정당당한 경쟁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겠다. 아울러 더 이상 부정과 비리에 물들지 않고 우리 모두 ‘행복한 쪼다’가 되자고 하면 몹시 언짢아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으니, 말조심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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