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다 여신과 백조 - 유혹, 하고 싶은가 받고 싶은가
레다 여신과 백조 - 유혹, 하고 싶은가 받고 싶은가
  • 승인 2018.11.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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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일전 화산폭발로 사라진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 유적지에서 2천 년 전의 벽화가 발견되었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건축물을 더 오래 보전하기 위해 보강작업을 하던 중 저택의 침실로 보이는 벽의 화산재를 긁어내자 백조를 안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여인도(女人圖)가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석회를 바르고 그 석회가 책 굳기 전에 채색하여 반영구적인 그림이 되도록 한 프레스코(Fresco) 기법의 이 그림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레다(Leda)와 백조’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신 레다의 품에 흰 털빛의 풍만한 백조가 안겨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스파르타의 왕비였습니다. 레다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왕궁 별장 근처에 있는 에우로타스(Eurotas) 강에 나가 목욕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제우스(Jeus) 신이 여러 가지 계책 끝에 레다를 품에 안게 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는 레다를 범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제우스는 레다가 좋아할 만한 백조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고, 검은 독수리에게 쫓기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러자 목욕을 하고 있던 레다는 쫓기고 있는 백조가 불쌍해 보여 얼른 품에 안아 감추어줍니다. 그 순간 제우스는 건장한 남자로 변하여 레다를 범하고 맙니다. 아주 극적인 구성으로 보입니다.

신문 기사에는 이번에 발견된 벽화 속 레다의 표정이 매우 관능적이었다는 해설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정은 의외로 겪게 된 육체적인 쾌락에 의한 표정이었는지, 아니면 생명이 위태로운 백조에 대한 연민의 표정이었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표정에 대한 해석은 폼페이 당시는 물론 그 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에게까지도 강렬한 영감을 주는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이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설가인 이상(李箱)의 작품 <동해(童骸)>에도 ‘나는 레다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이 레다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항구 도시로 무역이 흥하여 부유한 상인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저택의 부자 상인은 레다와 백조와의 결합을 어떠한 의미로 바라보았을까요? 그림은 주문하는 이의 취향이나 바람도 반영되어 나타나는 산물일 테니까요.

신문 기사에는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신화적 식견을 자랑하고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 젖기 위해서 벽화로 장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싣고 있습니다. 레다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와 결합한 날 저녁에 남편인 인간과도 결합하여 두 개의 알을 낳습니다. 그 중 한 알에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는 헬레네가 태어납니다. 헬레네는 전설적인 미녀로 그 어머니와 같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아닌가 보여 집니다.

서양의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 중 백조자리(Cygnus)는 바로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서 레다에게 접근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양 날개를 쪽 펴고는 있으나 이마 부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도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한없이 복잡하고 다기(多岐)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 별자리를 바라보며 레다 전설을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기존의 전설에 꿰맞추어 별자리를 해석했을까요? 참으로 오묘한 것이 세상사입니다.

이러한 신화 속의 복잡다기한 욕망은 그대로 인간의 욕망으로도 나타납니다.

이 ‘레다와 백조’는 ‘나는 과연 유혹하는 제우스인가? 유혹받는 레다가 되고 싶은가?’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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