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1997년 11월…한국 경제 운명이 걸린 일주일
국가부도의 날, 1997년 11월…한국 경제 운명이 걸린 일주일
  • 배수경
  • 승인 2018.11.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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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IMF 다룬 ‘국가부도의 날’
구제 금융 받기 전 상황 그려
위기 속 정부 - 국민 입장 교차
김혜수·유아인 명품연기 빛나
국
국가부도의 날 컷.

“모든 투자자들은 한국을 떠나라. 지금 당장.”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황금빛 이야기가 연일 뉴스로 전해지던 1997년 11월 초, 모건스탠리 한국지사에는 이런 지시가 내려진다.

28일 개봉된 ‘국가부도의 날’은 시간을 거슬러 1997년 11월, 호황에 취해 엄청난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던 그때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그러고보니 이맘때 쯤이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을 받기전 긴박했던 일주일의 시간이 영화의 배경이 된다.

이 기간 동안 위기를 감지하고 막으려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그의 대척점에 있는 재경부차관(조우진),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인생역전을 계획하는 윤정학(유아인), 그 소용돌이 속에서 큰 부침을 겪는 중소기업사장 갑수(허준호)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국가 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왔지만 국민의 알 권리는 정치 논리에 의해 묵살이 된다. ‘왜 위기를 알려야 하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끝까지 밝혀서는 안된다’는 관료들의 논쟁을 듣다보면 6.25당시 서울은 안전하다며 국민을 안심시킨 후 한강다리를 폭파했다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역사는 이렇게 조금씩 다른듯하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변주가 되며 돌고 돈다.

IMF 비밀 협상의 내막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화 속 한팀장과 IMF총재(뱅상 카셀)의 설전 장면은 볼 만하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는 우리나라의 많은 부분을 달라지게 했다. 금리가 오르고 자본시장은 개방이 되고 대량 해고로 평생 직장의 개념도 사라졌다. 그 책임의 대부분은 국민들의 탓으로 돌려졌고 그 피해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IMF 구제금융을 전 세계에 유례없이 빠른 시간에 갚으며 졸업을 하지만 그것이 남긴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드리워져있다.

‘국가부도의 날’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어떤 재난 영화보다 더욱 무섭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실제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는 그때 그 시절의 직격탄을 바로 맞았던 중장년층에게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위기는 반복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당연한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

영화 속 한시현이 던져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그것이 혹 또다시 다가올지 모를 위기에 맥없이 당하지 않는 비결이 될테니.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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