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匿名)의 두 얼굴
익명(匿名)의 두 얼굴
  • 승인 2018.12.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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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12월이 되면 얼굴 없는 천사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터넷에 ‘얼굴 없는 천사’만 검색해도 따뜻한 이야기가 수없이 전해진다. 2017년 한 구세군 냄비에는 5천만 원짜리 수표 3장이 들어 있어서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고, 경기도 파주시에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신 써 달라”는 쪽지와 함께 10kg 쌀 50포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또한 동대문구 용신동 맞춤형 복지팀으로 쌀 20kg 100포가 배달되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이 전달되었고,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는 매년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가 남몰래 거액을 기부하고 간다고 한다.

그 얼굴 없는 천사는 공무원들이 출근하기 전 화단에 돈을 숨겨놓고 전화로 사실만을 알리는데 지난 2017년 12월에는 5만 원권과 동전을 보내왔는데 기부액이 자그만 치 60,279,210원이라고 한다. 대구에도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여진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 2012년 1월부터 시작된 나눔은 2017년까지 총 8억 4천 여 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키다리 아저씨가 보내온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을 뿐 자신이 누군지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이름을 가리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의 사례들은 익명(匿名)의 아주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하지만 익명은 두 얼굴을 가졌다.

필자는 하는 일이 강의다 보니 운전을 하여 장거리 이동하는 일이 잦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평균 1년에 2만 km, 많이 타는 사람은 3만 km를 탄다는데 나는 일 년에 평균 6만 km를 탄다. 그러다 보니 차 안에 있을 시간이 많고 그 안에서 생각할 시간이 많다.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 평상시는 순한 솜털 같은 사람이 차 안에 운전대만 잡으면 180도 변해버린다. 왜 그럴까? 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사람을 흥분시키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운전하는 공간이 익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숨겨진 속의 분노가 운전이란 상황, 즉 얼굴이 드러나 있지 않는 익명(차 안이라는 비밀 공간) 때문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태어 난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엄마의 미소를 보고 따라 웃어주는 ‘사회적 미소’가 바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는 본능이다. 그래서 사람은 얼굴을 맞댈 때에는 서로 예의를 갖춘다. 매너 없는 사람으로 자신이 보이기 싫은 까닭이다. 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술(酒)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란 걸 술이 알게 하듯’ 운전은 그 사람의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익명의 공간이 된다.

차를 몰면서 한 번쯤은 경험 해봤을 것이다. 천천히 오던 차들도 차선 변경을 하려고 깜빡이를 키기만 하면 미친 듯 속도를 높여 달려온다. 그래서 초보운전자들은 차선을 변경 못해서 애를 먹는 경우가 정말 많다. 특히 병목구간(도로의 폭이 병목처럼 갑자기 좁아진 구간)에서 차선 변경을 하려면 여간 운전을 잘 하지 않고는 들어가기가 힘이 든다. 그럴 때 방법이 하나 있다. TV에서도 실험을 했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창문을 열고 얼굴을 보여주면서 양보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거의 양보를 해준다. 얼굴을 보고 거절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도둑이 얼굴에 복면을 쓰고 도둑질을 하듯 자신의 얼굴을 버젓이 드러내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적다. 얼굴이 곧 자신이기 때문이다. ‘쪽 팔린다’의 쪽이 바로 얼굴을 얘기한다.

컴퓨터 뒤에 숨어서 누군가에 대한 험담과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소한 악플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익명(匿名)은 두 얼굴을 가졌다. 그 두 얼굴 중 하나를 선택하며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이 공개될 때 부끄럽지는 않은 선택을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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