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자존심
  • 승인 2018.12.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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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
“안녕하세요, 이현숙 대표로부터 소개받은 김 아무개입니다. 대뜸 전화하면 놀라실까봐 문자로 먼저 인사드립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따뜻한 차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시간에 구애가 되지 않으니 날짜와 장소를 정해주면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국화향 짙게 베인 가을남자의 메시지다. 그는 맞선 볼 여성에게 전화를 바로 하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배려심이 깊고 자상한 남성이었다. 그녀는 그의 문자메시지에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는 K시의 유지이며 덕망과 경제력을 갖춘 부모님 밑에서 잘 성장한 엘리트였다. 부모님 사업의 후계자였고, 잘생긴 용모에 예의 바른 총각이었다. 아버지께서 상담을 하고 회원가입을 했는데 아들이 연애 경험이 없어 맞선을 보면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이라며 웃으셨다. 내 자식이지만, 결혼하면 속 썩이지 않고 잘 살 일등 신랑감인데, 요즘 아가씨들이 사람 볼 줄 모른다고 하셨다.

한 달 전에 첫 맞선녀로 싹싹하고 예쁜 유치원 교사를 소개해주었다. 그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첫눈에 빠져버렸다. “우리 아들이 지금껏 만나본 아가씨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하니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의 아버지의 밝은 음성이 전화를 통해 전해졌다. 두 번째 만남 때, 그는 프러포즈했다. 평소에 그답지 않게, 커플링도 하고 커플사진도 제안하면서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인연이 아니라는 메시지의 통보가 왔다. 며칠 후,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사윗감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잘되기를 바랐다. 딸의 결정에 무척 아쉬워했다. 딸에게 좀 더 만나보라고 설득을 했다고 하면서 그가 딸에게 전화를 하면 딸이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로봇처럼 정자세로 행동해서 딸이 답답해 하니 변화를 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감했다. 딸은 억지춘향 격으로 엄마의 극성에 장단을 맞춘 것이다. 그분도 자존심이 있는데, 따님이 좀 더 만나보고 싶으면, 직접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딸이 자존심이 강해서 전화를 직접 하지 않을 거라며 총각에게 말을 잘해달라고 사정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버지에게 상황설명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대화 내용을 전달했다. “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저를 좋아해야지. 경제력이나 조건을 좋아해서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거 같습니다. 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공감했다. 사람을 좋아하면 이유가 없다. 로봇같이 정자세로 행동해도, 내가 좋으면 멋있고 절도 있게 보이는 것이 남녀관계다. 수많은 세월 동안 익숙해진 문화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다. 상대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조금씩 맞추어 가는게 성숙한 사랑의 모습 아닐까?

대학 1학년때 미팅한 남학생이 기억난다. 그는 수수한 용모에 덩치 큰 옆집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었다. 바바리깃을 세운 멋진 도시 남자에 대한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마음에 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열쇠를 몇 개 들고 시집 가야 된다는 의대생인데, 연애결혼을 하면 무임승차하는 조건인 것이다. 어느날, 그가 데이트를 하고 우리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맥주를 가볍게 한잔 했는데, 그날따라 그의 얼굴에 취기가 올랐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이유도 없이 난 대문 안으로 도망치듯이 들어갔고,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후 2년이 흘러, 여자대학이라 그런지 결혼을 빨리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이 의사, 변호사, 사업가들과 맞선을 보았다. 불쑥 그가 생각이 났다. 용기를 내어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나의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 한번 해봤어요” “ 아~ 네, 그 이유가 전부입니까?” 새삼 뜬금없는 나의 전화를 궁금해 했지만, 나는 자존심 때문에 속내를 감추었고 버스는 지나가버렸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정한 자존심이란 무엇일까.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자신의 내면을 소중히 여기고 표현하며, 상대방의 마음까지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철없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새로운 소개팅녀에게 정중한 문자를 보내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그는 속이 멋진 남자일 수도 있는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인연을 놓친 그녀. 다음 인연을 만날 때는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여성이 되어 꼭 사랑을 이루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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