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스 엔드', 참호 속 공포와 무기력함에 대하여…
'저니스 엔드', 참호 속 공포와 무기력함에 대하여…
  • 김광재
  • 승인 2018.12.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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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다룬 ‘저니스 엔드’
영국군 장교들의 내면 관찰
전쟁의 모순·불합리성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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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호프 역의 샘 클라플린.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공세를 앞둔 영국군 참호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전쟁 영화이긴 하지만, 전쟁 자체보다 ’참호 속의 인간‘을 탐구하는 드라마다.

이 영화의 원작은 1차대전에 장교로 참전했던 영국 작가 로버트 세드릭 셰리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곡이다. 1928년 스물한 살의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으로 런던 아폴로극장 무대에 처음 올려졌고, 극장을 옮겨 2년 동안 공연됐다.

앳된 신참 소위 롤리는 고위장교인 삼촌에게 부탁해, 스탠호프 대위가 이끄는 프랑스 생캉탱의 최전선 C중대로 배치된다. 롤리는 친구이자 학교 선배이며 누나의 연인이기도 한 스탠호프와의 재회를 기대하지만, 막상 롤리를 만난 스탠호프는 당혹스러워한다. 전쟁에 지쳐 술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그는 롤리의 기억 속 스탠호프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엉클‘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오스본 중위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서서 부대를 돌보고 있다.

영화는 이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국군 장교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카메라는 진흙탕과 불안이 뒤섞여 무겁게 가라앉은 참호를 오가며 군인들을 비춘다. 하지만 사병들에게 주목하지는 않고, 그들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장교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사병들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들도 실은 겨우 버티고 있다. 장교들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그런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자살행위에 가까운 작전명령이 내려와도 그들은 저항이나 거부를 할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병들을 뽑아 사지로 내보내는 것, 그리고 그때 자신들이 앞장서는 것이 전부다.

영화는 현미경으로 작은 한 부분을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스스로 전체를 그려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 같다. 영국군 중대의 참호 속에서 벌어지는 드라마가 전쟁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깨닫게 해 준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디테일 속에 전체가 압축되어 들어있는 셈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국가는 그들을 영웅으로 추어올리겠지만, 그렇게 해서 다음 전쟁으로 또 젊은이들을 내몰겠지만, 전장에 선 젊은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영화는 100년 전에 끝난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전쟁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답은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이다.

거창한 전투장면이 없는 이 영화가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미 비포 유‘, ’헝거게임‘ 등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줬던 샘 클라플린이 스탠호프 대위를, ’줄무늬 파자마 입은 소년‘, ’휴고‘의 꼬마 에이사 버터필드가 롤리 소위를, ’기사 윌리엄‘, ’다빈치코드‘ 등에서 탄탄한 연기를 보여줬던 폴 베타니가 오스번 중위를 맡았다. 이들이 보여준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특히 폴 베타니는 ’인생연기‘라고 해도 될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작전을 앞두고 행복한 가족의 기억을 떠올리는 오스본 중위의 고통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질문. ’저니스 엔드‘ 즉 여행의 끝은 어디이며, 그것은 누구의 여행일까? 전쟁터로 가는 롤리 소위의 여행이며, 전쟁에 지친 스탠호프 대위의 여행이며, 가족을 떠나온 오스본 중위의 여행일까? 그렇다면 영화를 본 사람은 그 여정의 끝이 어디인지를 안다. 그런데 그 여행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여행이며, 뒤이어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여행이며, 더 나아가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전쟁이라는 여행이라면? 그렇다면 그 여정은 언제 끝날까? 끝이 있기는 할까?

김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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