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역습
괴물의 역습
  • 승인 2018.12.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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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이번 성탄절에는 산타의 선물 중 하나의 품목은 빠져야 할 것 같다. ‘액괴’가 그것이다. ‘액괴’는 액체괴물의 준말로 슬라임(slime)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실물에 가까운 모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에 발맞춘 어른들의 상혼(商魂)이 이번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76개의 액괴제품들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어 회수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어린이제품, 생활·전기용품 46품목, 1,366개 제품에 대한 안전성조사 결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74개 업체, 132개 제품에 대해 수거·교환 등 리콜명령 조치를 했다고 21일 밝혔다. 생활용품과 전기용품의 리콜 비율은 각각 5.1%, 6.3%인 반면 , 어린이제품의 리콜 비율은 11.4%로 3개 분야 중 가장 높았다. 액괴에 대한 안전성이 우려됨에 따라 시중 유통 중인 액체괴물 190개 제품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 위해성이 확인된 76개 제품에 대해 리콜 조치했다. 리콜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사업자는 해당제품을 즉시 수거하고 이미 판매된 제품은 수리·교환·환불 등을 해줘야 한다. 위반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고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일까.

이번 조사에서 검출된 물질은 CMIT와 MIT다. 생소하다. 물에 쉽게 녹고 휘발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 자극성과 부식성이 커서 장시간 노출되면 호흡기와 피부, 그리고 눈에도 강한 자극을 준다고 한다. 가습기살균제, 치약, 화장품, 샴푸 등에 많이 쓰이고 있다. 액체괴물 76개에서 CMIT·MIT가 검출됐고, 폼알데하이드 1.9배·프탈레이트계 가소제 9.4~332배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끔찍한 물질들이 다량 검출되었다는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 그만큼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고, 이제야 밝혀진 것은 여태까지의 문제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이라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 제품인데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서도 고가의 액체괴물 제품이 수년간 판매되어 왔다. 가격대는 천 원대부터 수 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액제괴물은 미국의 작가 조셉 페인 브레넌의 1953년에 발간한 공포소설 『슬라임』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소설의 내용면에서 보면 고려 말, 전설의 괴물 불가사리(不可殺伊)가 연상이 된다. 불가사리는 쇠붙이만 먹었지만, 슬라임은 가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둘 다 식탐이 많고 포식할수록 몸집이 커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가사리는 곰의 형상을 지녔지만, 슬라임은 일정한 형체가 없다. 불가사리는 악몽과 사기(邪氣)를 몰아낸다고 해서, 한때 병풍이나 조각에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액체괴물은 냉동상태에서는 꼼짝을 못하지만, 해빙이 되면 엄청난 포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불가사리도 슬라임도 괴물임에는 분명하다. 과거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가지고 놀던 찰흙은 단색 위주여서, 만들어진 형상 자체를 즐겼다면, 액괴는 다양한 색상만큼이나 화려하고 예술적인 연출이 가능해졌다.

‘생명에 관한 것’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특히 영문도 모르는 동심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예의다. 액체괴물을 만들어낸 업체들은 분명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구매를 할 것인지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좀 더 신중을 기했더라면, 어린이들의 창의력도 키우고 사랑도 받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초등학교 앞에서 판매하는 식품이나 완구들은 위생이나 안전의 사각지대다. 보기에도 조잡해 보이는 완구들은 실제로 사용해보면, 어설프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대충 만들어 판매하는 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이 땅의 어린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철저한 검수와 사후관리가 이루어져야하는 건 당연하다. 당장 오늘도 액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리콜이야 받는다손 치더라도, 이미 유해한 완구를 가지고 놀았던 고사리 손들의 동심은 또 어찌해야 하나. 다른 제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어린이들의 제품은 출시 전에 철저한 검사가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상식이다. 출산장려정책으로 미래의 어린이를 읊조리기 전에, 현재의 어린이부터 귀히 여겼으면 좋겠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열을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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