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스마일, 너무나 매력적인 은행강도...당신의 마음마저 훔친다
미스터 스마일, 너무나 매력적인 은행강도...당신의 마음마저 훔친다
  • 배수경
  • 승인 2018.1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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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 ‘미스터 스마일’
은행털이 93번·탈옥 18번
포레스트 터커 실화 바탕
슈퍼 16㎜ 필름으로 촬영
아날로그적 감성 돋보여
미스터스마일
 

단정한 슈트에 중절모,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느린 걸음걸이로 여유롭게 은행문을 걸어나오는 노신사. 알고 보면 그는 은행털이다.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마침표를 찍을 작품으로 ‘미스터 스마일’을 택해 우아하고 품위있는 은행털이로 변신을 했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작품 ‘내일을 향해 쏴라’의 은행강도 선댄스 키드가 나이들면 이런 모습일까.

영화는 93번의 은행털이, 18번의 탈옥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포레스트 터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은행털이라고 하면 복면을 한 강도와 총, 창구직원과 고객들의 겁에 질린 모습, 경찰과의 대치 장면들이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영화 속 범행 장면은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총을 가졌지만 총을 쏜 적은 없는 비폭력 은행털이 터커. “그 분은 신사였어요. 정중했어요. 좋은 사람 같았어요.” 마치 무슨 미담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는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행복해 보였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는 훔치고, 잡히고, 탈옥을 반복하는 습관적 범죄자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꽤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범죄의 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레드포드의 마지막 연기에 빠져보자.

‘노인과 총’(The Old Man and the Gun)이라는 원제가 국내에서는 ‘미스터 스마일’로 이름을 바꿔 개봉을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꽤 적절한 제목임을 알 수 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레드포드의 은퇴작을 위해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섭렵하고 그에게 헌정하는 마음을 담아 영화 속 군데 군데 잘 녹여내고 있다.

‘이 이야기 역시 대부분 실화다(This story, also, is mostly true)’라고 시작되는 오프닝은 ‘이 영화는 대부분 실화이다(Most of what follows is true)’라고 시작되었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오마주이다. 그리고 영화 초반 터커와 형사 존 헌터가 은행에서 스치듯 지나칠 때 존 헌트가 콧잔등을 만지는 제스처도 영화‘스팅’의 오마주이다. 터커의 지난 감옥생활을 보여주는 머그샷이나 탈옥 회상 장면에서도 레드포드의 젊은 시절 사진과 영상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은 어느 순간 터커와 그를 구분짓기가 애매해진다. 60여년의 연기 인생과 60여년의 범죄 인생을 연결짓기는 미안하지만 레드포드가 터커 그 자체인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미스터 스마일’에는 ‘광부의 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12)을 탄 씨씨 스페이식,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2017)을 수상한 케이시 애플랙 등 연기 잘 하는 배우들도 함께 등장한다. 영화 ‘갈매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엘리자베스 모스도 터커의 딸 역할로 잠시 나온다.

영화는 1980년대 초반이라는 배경과 어울리게 디지털 촬영이 아니라 슈퍼 16mm필름으로 촬영을 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던 로맨틱한 레드포드를 기억하고 있다면 주름 가득한 그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도 82세의 노신사 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그가 영화 속에서 쥬얼(씨씨 스페이식)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여느 젊은 커플들과 다르지 않다. 그의 정체를알면서도 그의 곁을 지키는 쥬얼과 보석가게에서 벌이는 해프닝은 좀 서글프게 느껴진다.

화려한 화면과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극적인 반전도 없고 시종 느린 화면(심지어 은행털이를 할 때 조차도 긴박함이 없다)의 ‘퇴물갱단’ 이야기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배우는 물론 감독으로, 그리고 선댄스 영화제의 설립자로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레드포드가 ‘영화팬들과 안녕을 고하기에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고른 작품인만큼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이 영화로 레드포드는 내년 1월 7일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지금껏 남우주연상과는 큰 인연이 없었던 그가 배우로서의 마지막을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려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가 영화팬들의 관심사가 될 듯 하다.

쉽게 이해가 되진 않지만 “생계가 아니라 삶”으로서 은행털이를 반복했던 포레스트 터커처럼 레드포드 역시 연기가 바로 삶 그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온 그가 ‘삶’같은 영화 속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그는 웃고 있었다’라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레드포드가 오랜 세월 그를 지켜봐 준 팬들에게 ‘그동안 행복했었다’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배수경기자 micbae@ida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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