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살인 · 폭력 · 공권력
<대구논단> 살인 · 폭력 · 공권력
  • 승인 2009.02.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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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살인행각은 참으로 무섭다. 허여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연약하게 생긴 여성들만 골라 벌여온 지능적인 살인행위는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가증스러운 면이 더 많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진술만으로 판단한다면 살인의 동기는 매우 인간적이고 동정을 불금케 하는 측은지심을 일게 한다. 과연 그럴까?

아직 40도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 이혼을 거듭했고 그나마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한꺼번에 화재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그의 범죄행각만 뺀다면 일말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게 생겼다. 그가 이런 정황을 근거로 “여자만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고 범죄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죽은 부인과 장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처럼 들리게도 만드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살인범답지 않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 대목을 의심하고 있으며 이를 전해들은 대부분의 국민들도 냉소를 금치 못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7명의 무고한 여성이 죽었다.

여성애를 빗대어 동정을 얻으려는 살인범의 심리작전은 경찰의 날카로운 범죄 심리분석에 의하여 곧 마각이 벗겨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은 현장을 중심으로 촬영된 CCTV가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으며 치밀한 DNA검사에 의해서 증거가 포착되는 등 과학수사의 개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용산 철거민 농성과정에서 벌어진 인명의 희생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철거민들의 동태를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경찰의 정보망이 어쩌면 그토록 무기력했느냐 하는 점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농성비용으로 사전에 6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거뒀다. 이 돈으로 휘발유와 시너, 골프공, 빈소주병 등 위험물질을 사들였다.

공장에서 대형 새총을 만들어 반입했다. 그런데 경찰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당했다. 과거에 정치적 사찰에만 골몰할 때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치안유지와 질서 확립을 위한 정보가 더 시급할 때 아닌가. 수백 명의 철거민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면 뭔가 캐치하는 게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위험물질을 반입하고 있다는 동태를 미리 파악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 인한 파장은 결국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당장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의 진퇴가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검찰이 나서서 농성현장의 사고발생 경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나오던 책임회피는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의 해법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과 공권력의 함수관계를 따져야 한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폭력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불법적인 폭력행위는 엄정한 공권력의 제재 없이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단호하고 명징한 공권력 행사는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번 철거민 농성은 시민들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줬다. 그들이 쏘아대는 대형 새총은 말이 새총이지 인명을 살상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게다가 화염병을 새총에 걸어 쏴댔다. Y자로 된 나뭇가지를 꺾어 고무줄을 댄 참새용 새총을 원용한 이 새총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불안감과 공포심의 대상이었다. 지나가던 행인이나 질서유지에 여념 없는 경찰이 맞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과거에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 용역 아르바이트를 나왔던 대학생이 목숨을 잃었던 전례가 있다. 무모한 폭력에만 의존하는 철거민 농성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이들의 폭력시위는 국회의원들이 전기톱을 들고 나오고 해머를 휘두르는 모범을 보인 것에 크게 고무된 면도 없지 않다. 법은 힘으로 무찔러도 된다는 경법정신(輕法精神)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몸소 보여줬지 않은가. 그렇다고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이 난무하는 농성장에 즉각 특공대를 투입한 잘못은 경찰에 있다. 장기전을 펼쳤다면 위험물질과 분노의 기세가 한풀 꺾여 저절로 진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편을 느끼는 시민들도 경찰의 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긁어 부스럼을 냈다.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고도 경찰이 비난을 받는 것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가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번 사태의 올바른 해결점은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는 일이다.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을지라도 도덕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아끼는 부하를 참했던 제갈량의 `읍참마속’은 천년을 두고 내려오는 리더십의 본보기다. 이제는 정권차원의 결단으로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필요하다. 시일을 끌수록 부담은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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