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속 우리 말의 빛
영화 ‘말모이’속 우리 말의 빛
  • 승인 2019.01.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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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과 교육 전공 강사
대학원에서 동화 창작 공부를 하는 수강생 선생님들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말모이’ 작품을 보러 갔다. 스토리 전개법과 주제 구성, 캐릭터의 성격, 어투 묘사들을 공부하려면 영화보다 좋은 자료가 없다 싶어 아까운 강의시간을 쪼개어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를 펼치면서 일제 강점기 (日帝强占期) 시대를 배경으로 사전을 편찬하던 조선인들이 총을 든 일본군에게 쫓기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첫 대목에서부터 긴박한 이야기를 가져와야 흡입력이 높다’는 내 강의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장면이라 좋았다. 유학을 다녀온 류정환(배우 윤계상)이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조선어학회를 시작하여 말모이 작업을 한다. 그러다가 툭하면 옥살이를 하며 두 자매를 키우는 홀애비 김판수(배우 유해진)에게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고 후에 조선생의 추천으로 김판수를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판수는 까막눈이다. 까막눈을 감추려는 얼렁뚱땅 연기와 가난과 무식 때문에 선입견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모멸감의 표현 연기가 사실감 있게 다가와 울컥울컥해질 때가 많았다. 공청회를 거친 한글 사전을 만들려고 ‘한글’이라는 책자를 무료 배포하며 지방의 방언들을 모으려고 광고를 내었는데 회신용 편지는 한 장도 없자 실망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힘이 된다며 우리 말 살리기에 힘을 쏟던 류정환의 아버지도 일제의 탄압에 30년 넘게 한글을 지켜낼 수 없음에 좌절하여 친일파가 되던 날, 아들 류정환은 아버지와 의절하며 사전 편찬 자료들을 몰수당하고 쫓긴다. 이런 절망 앞에서는 구원자가 빛으로 등장하는 반전이 있어야 영화가 산다. 우체국 근무자 조선인이 조선어학회 앞으로 온 지방 방언 자료 편지들을 일제 감시망을 피해 숨겨두었다가 돌려줌으로써 한줄기 빛을 얻는다. 또한 말모이 일을 하다 일제의 핍박에 죽어간 조선생의 아내가 힘을 보탠다. 남편이 만약을 위해 밤마다 한부씩 더 써서 장독 속에 숨겨둔 자료라며 꺼내주는 조력! 이런 빛줄기들을 반전으로 가져옴으로써 다시 사전 편찬 작업을 하게 된다. 반전 뒤에 비춰지는 희망이 우리 말의 소중함을 돌아보도록 가슴을 후려쳤다.

‘말’뿐이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 죽어간 선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경북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파락호(破落戶) 김용환의 일대기가 생각난다. 퇴계 제자 학봉 김성일 종가의 13대 종손인 그는 그 당시 돈으로 400억 되는 재산을 탕진하며 평생 노름꾼으로 살았다. 임종 무렵에 독립군 동지가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하자” 했을 때,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 했을 뿐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눈을 감았다. 일제 강점기 때 그의 할아버지 김용환이 사촌 의병대장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왜경에게 수모를 겪는 모습을 보고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항일의 뜻을 품고 평생을 망나니 행세로 위장하며 독립자금을 대었던 그의 인격이 이 ‘말모이’ 영화 위에 겹쳐져 보였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이런 선조들의 노력으로 찾은 대한민국과 우리말·글의 역사를 얼마나 알까? 말마다 영어와 신조어를 섞어 쓰고 거리에는 영어와 한자가 섞인 펼침막(간판)이 판을 쳐 국적을 분간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세계화 시대라서 그런가? 중국 연변이나 후진국 나라에 가보면 우리 동포들은 아직도 우리 말·글 간판을 내걸고 자긍심을 가지고 사는데…. 나라 안에서 푸대접받는 우리말이 지금 세계 속에 있다. 역시 세계화시대라서 그런가 보다. ‘싸이’가 ‘강남스타일’ 노래로 세계 속 인기를 누리고 연속극 ‘대장금’의 여파 등으로 우리 말을 배우려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 호감을 가지고 찾아오는 외국인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말 간판을 자랑스럽게 내걸자. 인사동에 가면 어깨가 펴진다. 커피 집 스타박스, 레드망고도 영어 간판을 걸려면 나가라고 쫓아내는 바람에 그들은 우리 말로 ‘스타박스’, ‘레드망고’로 써붙인 간판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말을 살려 써야하겠다. 정부 기관부터 “하이 서울”이라는 말을 버리고, 영문으로만 쓰는 일부 방송국 이름도 우리 말로 되잡자. 조상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우리 말이 세계를 향해 가고 있다.

보라! 2018년에 방탄소년단의 우리 말 노래가 세계인의 인기를 얻고 유엔에서 연설까지 하였다. 이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우리 말 노래꾼 방탄소년단에게 ‘우리 말 으뜸 알림이’라는 특별상을 추천하여 국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게 하였다. 한글은 제2회 세계 문자 올림픽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문자의 기원, 구조와 유형, 글자의 결합 능력, 독립성 및 독자성, 실용성, 응용 개발성을 모두 따졌을 때 우리 문자가 가장 쓰기 쉽고 배우기 쉽고 어휘가 풍부해서 받은 세계 속 금메달이다. 금메달 나라의 높은 어르신들부터 우리 말·글의 가치를 바로 알고 찾아 쓰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체통도 서고 외국말 홍수를 쉽게 막을 수 있겠다. 작년 한글날, 한글이름짓기연구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밝은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새벽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트인별’이란 한글이름을 선사했던 의미가 곱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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