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허상과 실체 사이 투영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허상과 실체 사이 투영
  • 황인옥
  • 승인 2019.0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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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이은재展
시간의 흐름 따른 변화에 의문 제기
마네킹·휴지 등 버려진 쓰레기 소재
진리 좇는 과정 설치미술로 시각화
191A3455-대작
이은재 作 ‘겹쳐진 장면’.

감각적이어야 할 전시장이 을씨년스럽다. 폐허를 방불케 했다. 사물이나 자연물 모두 생명 다한 쓰레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놓아서 그렇다. 여자 마네킹과 남자 인물상, 소금에 절인 휴지, 의자, 액자, 연못과 이끼, 식물의 넝쿨, 나뭇잎이 적절하게 관계를 맺어 놓았지만 생명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이은재의 봉산문화회관 전시 작품이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진리를 시각화했다”는 것. “전시된 물건들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오직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하나 뿐이죠.”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3년 준비 끝에 원하던 대학에 원서를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내리 3년을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언제까지 작업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학원 진학의 꿈을 접는 대신 파리의 어느 공동작업실에서 다국적 작가들과 함께 작가로 살기로 결심한다. 10여년간의 파리 작업 시기가 계속됐고, 그 시기 “어쩌면 우연으로 점철된 이 상황이 필연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파리에서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지금의 저는 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죠.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프랑스 작업 시기에는 회화를 그렸다.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거나 번지는 방식들을 겹치는 작업들을 했다. 파리에서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는 자신의 상황을 작품에 대입했다.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는 행위에서 우연적으로 물감의 흔적이 남게 되죠. 그 우연들이 겹쳐지면서 마지막에 결과물이 남게 되는데 이것은 우연이기보다 필연에 가깝게 다가왔어요.” 우연 이면에 필연이 반드시 숨겨져 있다는 이치다. 작가는 이를 “신의 보이지 않는 섭리”에 비유했다. “필연적인 순간은 우연들의 겹쳐짐으로 얻어지지만 그 우연 속에는 신의 섭리 같은 보이지 않는 필연이 존재하죠.”

하나의 사물이 변화하면 새로운 이미지를 얻는다. 이후 또 다시 전혀 엉뚱한 이미지로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가 거듭될수록 역사는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변할지라도 과거를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인간처럼. 여기서 작가는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변화하는 이미지 속에 진짜는 어디에 있으며, 허상은 또 무엇일까?” 작가는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이미지는 ‘가짜’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이미지는 허상에 불과할 뿐 실체는 따로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어제의 모습이 내일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데 그것을 진짜라고 할 수는 없죠.”

작가는 2010년 귀국한 후 회화에서 설치로 전환했다. 이번 봉산문화회관에 설치된 작품의 재료는 쓰레기다. 버려진 사물과 생명을 다한 자연물을 ‘겹쳐진 장면’이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허상인 가짜 이미지와 실체인 진짜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때 사물을을 연결하는 방식은 수동적으로 진행한다. “진짜와 가짜를 쫓아가기 위해 각각의 주워온 물건들을 겹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아요. 주변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하죠. 물건들과 주변 상황들이 가진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거죠.”

과연 진짜는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존재할까? 그가 ‘날아가는 새’ 이론을 펼쳤다. “새가 공중에 떠 있기 위해서 땅이 잡아당기는 힘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순간이 있겠죠. 그 순간을 하나의 점으로 표현하면 새가 날아가는 직선은 수많은 점들의 이어짐으로 이해할 수 있죠. 그 점들이야말로 진짜에 해당되죠.” 새가 날아가는 이미지는 가짜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중력과 바람과 날개의 마찰이 하나가 되는 지점, 그것이 진짜라는 이야기다. 마치 우연과 필연의 관계처럼 진짜와 가짜가 교차되어 있다는 것.

“모든 것은 순간순간 변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요. 그 순간의 장면이 진짜죠. 제 작품은 가짜 이면에 가려진 진짜 이미지를 좇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봉산문화회관기획 전시공모 ‘헬로우! 1974’ 선정작가전으로 열리는 작가의 전시는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 3월 17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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