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근식’
‘작은 이근식’
  • 승인 2019.01.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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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더니 대 여섯 명의 선배가 잠시 보자 한다. 말하는 투가 시비를 걸려는 듯 거칠다. 이거 무슨 일인가 하여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확인하며 따라 나섰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눈에 뜨이지 않게 녹음기를 켜 놓거나 112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에 가더니 10여 명이 둘러서서 험악한 소리를 해댄다. 험악한 말을 빠르게 지껄이기에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왜 일일이 대꾸 하냐고 윽박지른다. 이놈들 깡패들이구나 싶은데, 10여 명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두려움이 밀려온다. 아 이거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온갖 생각이 짧은 시간에도 오고 간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다.

아, 꿈이었구나. 이 나이에 폭력배들에게 협박당하는 꿈을 꾸다니 최근 매스컴에서 보도되고 있는 폭력 사건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교수가 학생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 스포츠 지도자가 금메달을 빙자하여 어린 이성 선수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한다. 체벌 수준이 아니라 가학적이고 모욕적이며 살인에 가까운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체육 강국이란 명분 아래 그런 일들이 감추어져 왔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폭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즉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폭력을 다스리고 제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프로야구 선수 중에 ‘작은 이근식’으로 불린 선수가 있었다. 그는 나의 중학교 1년 선배였는데 당시 전국 중학교 야구선수 중 타격 1위로 전교생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그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야구와 관련한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중학교 때 있었던 어떤 일 때문이다.

당시 야구부 선수들은 특유의 거친 성격에다 동기생보다 한두 살이 많은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수업을 잘 들어오지 않다가 가끔 들어와서 학급 분위기를 흔들어 놓곤 했다. 그런데 유급하여 동기생보다 나이가 많은 한 야구선수에게 같은 반 친구가 말을 놓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그 야구선수는 그것을 핑계로 그 친구를 트집 잡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시 그런 사태를 일시에 해결한 사람이 선배였던 ‘작은 이근식’이었다.

그는 운동장에 모인 우리들 앞에서 그 야구 선수를 심하게 꾸짖은 후에 앞으로 누구든지 너희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와서 말하라며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우리가 놀란 것은 그가 같은 야구부인 그의 동료 편에 서지 않고 우리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이로는 별 차이가 없을 텐데 그의 말에 친구를 괴롭히던 야구선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최근 가슴이 섬뜩한 여러 폭력 사태를 보며 중학교 선배 ‘작은 이근식’이 기억 속에 살아났다. 그 덕분에 중학교 시절의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아. 여차하면 그 형에게 말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 어쩔 수 없이 폭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막아주는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제도와 법으로 막을 수 없는 인간의 폭력성은 다른 인간의 용기와 의도적 나섬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중학교 선배였던 ‘작은 이근식’이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의 중학교 시절, 그는 우리를 폭력으로 부터 보호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끔찍한 괴롭힘이 그의 나섬으로 인해 해결되었으니 당시의 고마움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작은 이근식’이 곳곳에 필요하다. 법과 제도로써 막을 수 없는 폭력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줄 용기 있는 사람의 존재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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