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책없이 해맑은 청춘을 보라!
이 대책없이 해맑은 청춘을 보라!
  • 백정우
  • 승인 2019.02.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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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처한 현실의 민낯
희망고문 없이 담담히 그려
섣부른 위로도 비관도 않아
백정우의줌인아웃
영화 ‘다영씨’ 스틸컷.


 

백정우의 줌 인 아웃, '다영씨'와 고봉수 사단


너도나도 불황이라 아우성치는 세상에 영화를 매년 한 편씩 찍고 개봉하는 집단이 있다. 집에 돈이 좀 있느냐고? 천만에! 독립영화감독이고 독립영화다. 가히 수상한 ‘녀석들’이다. 항상 열심이고 미래지향적인 듯해도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래도 쾌활하다. 안 되면 좀 어떠냐고, 이기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 속칭‘고봉수 사단’ 이야기다.

그들의 첫 번째 영화 ‘델타 보이즈’는 지역 중창대회를 앞두고 급조된 네 남자의 요란한 분투기다.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에 편입되는 순간 인물도 같이 매몰된다. 이걸로 끝이면 무슨 재미가 있을라고. 뭘 해도 안 되는 세상을 쪽팔리지 않고 통과하는 법에 대하여 감독은 네 명의 사내와 함께 고민한다. 중창대회는 취소되었지만 네 남자는 숱한 육박전 끝에 원룸 옥상에서 나비넥타이를 매고 그들의 판타지를 완성한다.

좌충우돌의 파노라마를 단숨에 넘는 우렁찬 노랫소리, 삶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현실을 인정하고 또 다른 꿈을 품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것이다.

‘튼튼이의 모험’은 더 황당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고등학교 레슬링부. 선수는 1명이 전부이고 해체 위기다. 해체를 막기 위해선 지역예선 1승이 필요하다. 팀을 지키기 위해 유일한 선수가 고군분투한다. 힘들게 동네 불량배를 끌어들인다. 중·고등학교 내내 레슬링을 한 선수보다 입문 한 달 밖에 안 된 불량배 실력이 월등하다. 역시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얘기다. 1승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죽도록 뭔가에 매달려본 기억이 그들의 인생에 자양분이 될 것인즉.

지난해 12월 개봉한 ‘다영씨’는 무려 흑백영화다. 심지어 무성영화다. 한술 더 떠 장편영화 기준을 간신히 넘긴 60분 46초의 러닝타임이다.

이건 또 무슨 배짱인가. 삼진물산 직원 다영씨를 흠모하는 택배사원 민재의 이야기다.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와 그리피스의 ‘부서진 꽃잎’을 뒤섞은 모양새다. 피아노 연주가 바닥을 깔고 그 위에 갑질과 차별과 집단따돌림 등 한국사회 구조적 부조리를 세워 올린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이고 처절함이 제거된 사회 드라마이다. 극악무도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다. 존재증명에 골몰하며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이 있을 따름이다.

고봉수 감독과 배우 백승환과 신민재와 김충길 등으로 구성된 고봉수 사단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영화집단이다. 흥행작 하나 없어도 그들의 영화를 기다리는 고정 팬이 있다.

판타지로도 위로하기 힘든 척박한 현실이 그들 영화의 자양분이다. 기존 영화가 전시한 장밋빛 세상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고봉수 사단은 말한다. 종종 세상은 너의 분투를 실패로 보답한다고, 대부분은 실패의 연속인 삶을 살게 된다고. 그래도 웃으면서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와 무분별한 모험정신 사이에서 펄떡이는 고봉수사단의 영화가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말하고,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고 등 두드려주는 해맑은 낙관주의 말이다. 내가 이들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백정우

 

백정우 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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