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설 명절을 지내며
<대구논단> 설 명절을 지내며
  • 승인 2010.02.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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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 안경광학과 교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무진장 많이 하고, 많이 들었던 인사일 뿐 아니라 카드나 연하장, 심지어는 전자메일과 핸드폰 문자에도 도배가 되다시피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문장이다. 불과 달포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새해인사가 달력 한 장 지난 2월, 음력설을 전후해 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인사와 덕담을 많이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

우리나라에 신정과 구정, 설이 일 년에 두 번으로 늘어난 게 언제부터였는가? 양력 1월1일을 신정이라 하고, 음력 1월1일을 구정이라 한다. 신정과 구정 모두 일본식 한자어로서 양력은 해를 보며 만든 거고 음력은 달을 보며 만든 것이기 때문에 물론 날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설, 신일(愼日), 원일 (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이라고도 불리는 새해의 첫날은 신정 또는 구정이라는 말 보다는 `설날’이 바른 표현인 듯하다.

세시풍속 대부분이 설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집중될 정도로 설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지만 이중과세 논란 등으로 인해 설은 유달리 수난을 많이 겪었던 명절이기도 하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부터 비롯된 개혁의 일환으로 1896년부터 양력을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새 달력에 의한 양력 1월1일을 신정이라 하고 묵은 달력에 의한 음력 정월 초하루를 구정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굳이 음력설에 지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을 보면 오랜 관습에 의한 음력설은 우리 명절이고, 개화사상에 의한 양력설은 오랑캐의 명절이라는 관념은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이러한 생각은 1910년 일본에 국권을 상실하면서 `양력설을 지내면 친일매국, 음력설을 지내면 반일애국’이란 관념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전통을 아끼는 사람들은 음력설을 고집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일본은 강압적으로 양력설을 쇠도록 이중과세 정책을 폈다.

1945년 해방 이후 정부가 경제부흥을 꾀하면서 노는 날을 줄이고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중과세란 말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고 달력에서 설날이란 말이 사라졌던 때도 있었다. 이 후 구정은 1985년 5공 정부에 의해 `민속의 날’이란 어정쩡한 이름으로 되살아났다가 1989년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다시 설날로 되살아나 전후 3일이 공휴일로 정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설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이다. 고향을 찾아가 선산을 돌아보고 바쁜 생활 탓에 연락이 뜸했던 친지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력에 맞추어 주위의 시간들을 정리하기 때문에 음력설이 일 년의 첫날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친척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떡국을 먹는 명절로 인식되고 있지만 음력설은 자칫 새해 아침 세운 계획과 다짐들이 느슨해지기 쉬운 시점에서 신년의 각오도 정비해보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상과 가족에 대한 혈연적 유대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처럼 또 새로운 한해를 맞으며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어렵고 힘들었던 일도 많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많았다. 안 좋았던 기억들은 훌훌 털어내 버리고 좋았던 기억들만 가슴에 깊이 담아 새해를 맞는 것이 더 복스럽지 않을까?

흔히들 복은 `받는’ 것 또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복을 바라거나 빌곤 한다. 그러나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 지은 만큼, 내가 베푼 만큼, 내가 뿌린 만큼, 내가 땀 흘린 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설 명절을 맞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는 그렇게 하더라도 올 해부턴 복을 많이 짓고 지어 흘러넘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흐르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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