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백정우의 줌인아웃]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 백정우
  • 승인 2019.03.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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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줌 인 아웃,  영화 '가버나움'

상해죄로 수감 중인 소년 자인, 자인은 동시에 부모를 고소한 원고이기도 하다. 경륜과 지혜의 재판장 앞에서 시작되는 자인의 진술은 과거의 시간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치아검사로 나이를 추정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자인이 열두 살 즈음의 소년임을 밝히고, 자식에게 피소되어 법정에 출두한 부모의 상황은 빈민가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을 포착한 버드아이 숏으로 함축된다.

조르주 아감벤에 따르면 국가권력은 법 내부도 외부도 아닌 식별되지 않은 영역을 창출함으로써 작동한다. 예컨대 불법이주노동자가 그렇다. ‘법질서 외부의 존재’ 자격으로 한국사회에 포함된 사람들이다. 인권유린과 노동착취에도 항변하지 못한다. 그들은 행위 이전에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를 받지만 법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 자인과 그의 가족 역시 같은 신세다. 구호소의 배급품조차 받을 수 없고 출생증명서가 없기에 난민보다 못한 존재이다.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하니 도처에 널린 불법의 유혹과 손잡을 수밖에 없다.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은 서구사회가 만들어 작동 중인 국가와 권력시스템이 낳은 예외적 존재에 관한 보고서이다.

장편 데뷔작 ‘캬라멜’에서 레바논 사회의 견고한 보수성에 대항하는 미용실 여자들의 판타지를 코미디로 그려낸 라바키는 낙관적 세계관을 장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참혹한 일상과 맞설지언정 인간 존엄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 삶의 열망을 끊임없이 길어 올림으로써 생명주권을 되돌아보도록 만든다. ‘가버나움’이 주권 없는 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단순 고발에 그치지 않는 건 이 때문일 터다. 라바키는 여동생을 매혼하려는 부모에 저항하고 필사적으로 요나스를 돌보는 자인의 분투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생명의 힘을 증언한다.

종교와 인종갈등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와 여성과 노인이다. 자인의 가족도 분쟁과 약탈을 피해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혹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탈. 그러나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결과는 존재 없는 생이었다. 하물며 “케첩에도 이름이 있고 제조 년 월, 유통기한이 있다.”는 자인의 푸념은 제도 밖 삶에 대한 쓰라린 묘사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인생은 비참하다. 미래가 없는 삶이다. 무엇이 될 수 있는지조차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고소당해 법정에 나온 아버지의 절규가 얄팍한 변명으로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유치장에 갇힌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타난 종교인과 백인봉사자의 미소가 말하는 것. 감독은(이어지는 시퀀스에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원하지 않아요. 우리를 짓밟을 뿐, 이라는 자인의 진술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는 난민과 불법이주의 근원적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분명하게 지목한다.

공동체를 보다 인도적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건 온정과 시간이다. 공생의 해법을 찾기 위한 신뢰구축이 쉽지 않더라도 믿음을 가져야한다. 깡마른 몸에 수갑 찬 아이로 시작한 영화는 자인이 신분증명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끝난다. 가슴 먹먹할지언정 2시간을 참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만나는 자인의 해맑은 미소. 죽을 만큼 고통스런 땅에서 살아남은 자의 외침이다. 그러니 눈을 들어 ‘이 사람을 보라.’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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