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정설을 깬 행위예술의 대부
회화의 정설을 깬 행위예술의 대부
  • 황인옥
  • 승인 2019.03.11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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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展 내달까지 리안갤러리
‘신체드로잉’ 퍼포먼스 선구자
캔버스 등지고 붓질 휘둘러
원초적 행위로 회화본질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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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건용이 하트 모양의 ‘신체드로잉’ 연작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 이건용(77)이 캔버스 화면을 등지고 붓을 휘두를 때마다 강단 있는 선들이 화면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가 화면을 등지고 휘두른 붓이 허공에서 화면에 안착하면서 선들의 중첩이 드러나고, 마침내 그의 몸이 화면에서 분리되자 대표작인 ‘신체드로잉’ 연작이 형태를 드러냈다. 화면에 밀착된 몸에서 뻗어나간 선들에는 활력이 넘실댔고, 지난 5일 전시 개막식에서 퍼포먼스가 곧 드로잉으로 화(化)하는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본 관람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회화사에서 캔버스를 등지고 신체를 움직여 회화를 그리는 시도는 제가 최초로 했어요. 전통 회화의 상식에 의문을 던지는 퍼포먼스였어요.”

작가의 신체드로잉이 주목받는 데는 캔버스 정면에서 그린다는 회화의 정설을 깼다는 데 있다. 7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미술언어를 모색하는 작업들을 쏟아냈으니, 그의 전위성과 독창성은 일찍부터 발현된 셈. 그가 고등학교 때 심취했던 철학 이야기를 꺼냈다. ‘신체드로잉’ 밑바닥에 깔려있는 철학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추억소환이었다. “배제고등학교 1학년 때 논리학을 들었어요. 그때 현상학에 심취했죠.”

현상학은 후설이 창시한 철학운동이다. ‘사상(事象)‘ 그 자체로 돌아가라’를 모토로 인간의 감정을 이입하는 직관의 도움을 받아,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이 드러나게 하자는 주의였다. 이건용의 신체드로잉은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 ‘신체드로잉’이 신체와 평면이 만들어내는 조건이 드러나는 현상의 결과인 것. 신체의 직관적 행위라는 형이하학으로 ‘회화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위성과 독창성은 정점을 찍는다. “‘왜 화면을 마주보고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신체드로잉으로 풀어내려 했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입으로 소통하다 벽을 짚고 서게 되면서 벽에다 원초적인 행위를 하는 것과 신체드로잉이 다르지 않아요. 직관적 행위의 결과로 회화의 본질에 접근했다고 할까요?” 이건용은 국내 전위예술의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힌다. 1969년 한국 개념미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ST(Space &Time)’와 ‘AG(Avant-Garde)’ 그룹을 조직해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며 몸과 공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 예술적 행동의 가능성을 강조해왔다. 1971년에 거대한 나무몸통이 뿌리내린 흙더미를 정방형으로 잘라 바닥에 설치한 ‘신체항’을 발표하고 단숨에 관심을 끌었다. 이후 공간 안에서 사물과 상호적 관계를 맺는 자신의 몸짓 행위를 하나의 항(項)으로 설정하고, 거대한 화면 뒤에 서서 팔을 앞으로 내밀고 반복적인 선을 긋거나 화면을 등지고 서서 자신의 몸의 궤적을 따라 방사형의 선을 긋는 ‘신체드로잉’을 발표하며 전위성과 독창성에 깊이를 더해갔다. “신체퍼포먼스가 곧 귀화로 귀결되는 방식을 통해 2차원 평면에 새로운 양식을 모색했죠.”

이건용은 2010년 중반부터 국내 미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로 기획된 개인전 ‘달팽이 걸음’전을 시작으로 2018년 1월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된 호주 작가 4명과 함께 진행한 ‘A4 아시아현대미술센터 그룹전’과 지난해 8월 세계3대 갤러리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에 있는 페이스 갤러리 개인전을 통해 주목받으며 상승세를 탔다. 페이스 갤러리 전시 이후 작품 가격이 올랐으며, 이번 리안갤러리 전시에 10여점의 작품이 개막식 이전에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A4아시아현대미술센터 전시와 페이스 갤러리 전시에 전문가와 젊은층이 운집해 저의 퍼포먼스를 관람하며 호응을 보내주었어요. 시드니 전시 때는 공항에서부터 기자들이 따라다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아는지’ 깜짝 놀랐어요.”

그의 작품세계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선명성’을 언급했다. 전달하려는 개념을 이질적인 것들과 섞지 않고 지엽적으로 접근해 선명한 이야기 구조로 만듦으로써 시점과 공간을 초월한 폭넓은 소통을 이끌고 있다는 요지였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종이박스 작품은 그런 맥락에서 대표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매체에 신체드로잉이라는 원초적인 행위를 더해 이야기 구조에 선명성을 확보, 소통력을 높인 것.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이고 나 역시 예술가로서 당대를 절실하게 삽니다. 예술 작업 역시 마찬가지에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표현들을 명징하게 드러내며 그들과 소통력을 넓히는 것이죠.” 전시는 4월 30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 053-424-220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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