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
실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
  • 승인 2019.03.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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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이학박사·전 대구시의원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2일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방문 자체보다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것은 사복 차림으로 위장 경호를 하고 있던 한 경호원이 소지하고 있던 기관단총을 노출한 것이다.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퇴근길에는 재래시장에 들러 국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국민과 눈높이가 맞는 대통령’이 되겠음을 외치던 모습을 믿었던 많은 국민들은 분명 이번 일로 실망이나 씁쓸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전 정부들과 달리 무엇인가 이 정부에 대해서는 국민들은 국민친화적이며 또한 투명하고 거짓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니 어찌 보면 경호원이 기관단총을 가지고 본인이 모시는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도 한다. 또 총 좀 보이면 어때 하는 생각도 물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보이지 말았어야 할, 시장이라는 가장 서민적이고 소통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장소에서 하물며 사복으로 위장경호를 하는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을 건 기관단총을 내보이는 것은 실수 중에서도 좀 뼈아픈 실수일 것이다.

현 정부는 ‘열린 경호, 낮은 경호, 친근한 경호’를 구호로 탈권위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대통령의 소신을 경호에서도 보이려고 했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좀 의아하다. 경호를 활짝 열어서 하고, 낮게 하고, 친하게 하려면 경호를 왜 하는가? 이런 구호까지 만들어가며 꾸역꾸역 친국민적인 소통의 정부라는 그 프레임을 깨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든 직업에는 본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분은 의무적으로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 할 직분인데 경호처의 본분은 대통령을 그 어떤 순간에도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예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본분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희석하는 순간 기저에 깔린 핵심도 흐려지게 된다. 소통의 프레임으로 똘똘 뭉쳐 경호의 본분조차 열고 낮고 친근히 하겠다고 했기에 지금의 이 실수에 사람들은 조금 더 날서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애초에 경호만큼은 엄하고 강하게 한다고 했어도 그 누구도 욕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군대를 강하고 흔들림 없이 한다고 했을 때 누가 욕하겠는가. 대통령 경호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원수이자 가장 중요한 사람을 지키는 부분에 있어 철저하고 강하게 한다고 했을 때 안된다, 소통해야 된다, 낮춰라, 열어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을 이전과의 차별성을 두고자 애써 바꾸려 한 것, 거기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더 부끄러운 것은 이번 일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경호처가 실수를 했다면 청와대는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일이 이렇게 언론의 뭇매를 맞게 된 데에는 청와대가 유사한 사례가 기존 정부에도 있었음을 친절하게 6장의 사진을 첨부해서 알려주며 자신들에게만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유치하지 않은가? 이전 정부들의 거의 모든 것을 적폐라 여기고 하나하나 청산해야 할 암덩어리로 취급하다가 지금처럼 사건이 생기면 전에도 있던 일인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하는 것, 초등학생의 대응 아닌가. 차라리 깨끗하게 실수임을 인정하고 잘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해당 경호원 뿐 아니라 경호처에 다시 한번 기강을 잡도록 하겠다 정도로 대응하면 될 것을 왜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무결점 정부여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작은 실수조차 변명으로 대응하는 것, 이것이 적폐라고 생각한다. 김기춘의 리스트는 블랙리스트고 김은경의 리스트는 체크리스트라 말하며 미화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믿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오만함, 그것이야말로 결점 중의 결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쌓는 것은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신뢰가 왜 어렵고 귀중한 것인지 아는가? 100이라는 신뢰가 무너지면 zero(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신 이라고 하는 -1000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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