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벽을 넘어
장애의 벽을 넘어
  • 승인 2019.04.11 2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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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강사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81년에 처음 제정되었다. 4월로 정한 이유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재활 의지를 높일 수 있어서란다. 사실, 90% 이상이 후천성 장애인으로서 장애는 삶의 한 부분이기에 재활 의지와 꿈을 가지고 자신을 믿고 도전하면 장애는 기회가 된다. 장애의 벽을 넘어서 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 중에 널리 알려져 있는 몇 사람을 돌아본다.

석창우 화백. 서른 살 때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두 팔을 잃었는데 그림을 그려달라는 네 살 박이의 생떼에 못 이겨 쇠갈고리로 된 의수로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석화백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까지 전해주며 예술에 대한 창작 혼은 벽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웅렬 화백. 온몸이 마비되어 왼쪽 발가락 하나만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가 발가락에 꽂아준 밥숟가락이 연필이 되고 붓이 되어 2018년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 대상을 받았다. 최화백의 그림은 비워진 마음, 자유로운 마음,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델. 작가, 영화배우로 당당하게 살며 장애인 육상대회에 출전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도 선정되었던 애이미 멀린스. 태어났을 때부터, 자립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맞서 두 의족을 사용하면서 살아온 애이미 멀린스는 우리에게 권한다. 장애를 억눌린 마음으로 보지 말고 역경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보라고. 내 가까이에도 장애의 역경을 희망으로 딛고 일어선 사람이 있다.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봉사하는 삶으로 귀감이 되는 분이다.

이십년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학생의 아버지 이야기다. 방학 숙제로 ‘부모님 자서전’을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는데, 그 과제물로 써온 글을 읽다가 학생의 아버지가 목사이면서 휠체어를 타는 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그에게 과외지도를 받던 멀쩡한 고등학생이었던 어머니와 사귀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여 목사가 됐고 두 딸을 두었다. 나는 두 분의 순수한 러브스토리부터 존경해 왔다. 상대의 신체장애를 피하거나 넘어서야 할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사목을 돕는 일에 헌신한 학생의 어머니였다. 목사님은 사목활동이나 복지회관 관장으로서 참 많은 일을 하셨고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워, 내겐 자랑스러운 제자로 남겨 주셨다. 목사님은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나는 지금껏 그분의 뜻을 후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다.

‘너가 장애를 입었거나 자식이 장애를 지녔다면 그분처럼 도전하며 꿋꿋하게 살고 남도 돌아볼 수 있겠느냐?’ 천만에. 나하나 사는 일조차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나에 비하면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은 참으로 의지가 굳고 고결한 영혼들이다.

고결한 영혼이거나 다리가 없어 시장통 바닥에 잡화통을 밀며 사는 일에 골몰하는 삶이거나 그들은 내 형제다. 내게는 아직 그런 장애가 닥쳐오지 않았으니 여력이 있는 동안 그들을 조금씩 보듬어주며 복을 나눌 일이다. 살뜰히 잘 대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로 상처 주는 일부터 삼가야 하겠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생각의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다’는 표현이나 ‘눈먼 장님 같은 행정 등’의 빗댄 용어표현이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는 상처가 된다. 편협한 관념에서 부당한 질문을 함으로써 약자를 상처 내는 일도 있겠다.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책에서 “사회적 약자는 힘이 약한 사람이 아니라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고 짚었다. ‘너 빨갱이지? 장애인 주제에…’ 이런 폭언 현장을 보면서 침묵하면, 제 삼자라도 폭력 유지 은폐를 돕는 일이다. 억울하게 부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침묵하는 사람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침묵을 강요받아 힘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장애인을 다른 차별과 불의 속에 놓아두는 무관심이나 침묵은 자신의 안일을 위한 생존본능에서일까? 비겁에서일까? 단순한 예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차편(車便)이나 편의시설이 여의치 않으면 이동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이동은 가능하더라도 활동 지원이나 생활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되지 못하면 겨우 확보한 이동권 마저도 도미노처럼 덧없이 무너져 버릴 텐데….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딱 하나만이라도 관심 가져보자는 마음을 다진다. 장애자의 이동할 권리뿐 아니라 유기적 연결과정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보살펴 봐주는 일 하나만이라도 옆에서 함께 해나가며 복을 나눠보자는 다짐. 그리고 사회에 드리고 싶은 기도는 이것이다. 그런 모든 일에 앞서, 삶에서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미리 안전에 유의하는 사회가 되기를,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넘어서 역경을 딛고 삶을 빛낼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주는 세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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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2019-04-12 19:29:51
장애인의 달을 맞아 선입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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