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내면의 고독·허무 쓰다듬다
인물 내면의 고독·허무 쓰다듬다
  • 황인옥
  • 승인 2019.04.15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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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재展 27일까지 맥향화랑
소설 속 주인공에 감정 이입
인물 심리상태 화폭에 담아
어린아이로 이미지 대상 확대
선물3
이옥재 작 ‘선물’.




학부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 이옥재의 정체성을 굳이 따지면 문학에 가깝다. 그림마저 문학 작품 속 인물이나 장면을 포착해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한 문학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문학 속에서 성장해 가는 주인공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언급했다.

문학 작품 속 장면을 그리며 그림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것은 대학원 재학 시기였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과 조형미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나 만의 무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일말의 주저함 없이 소설 속 인물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지도 교수님께서 총을 갖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저는 총알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신 말씀에 용기를 얻어 소설 속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문학이 제게는 총알이었던 거죠.”

수많은 문학 작품들 중에서 작가의 마음을 흔드는 작품들에는 공통 흐름이 있다. 고독, 허무 등 인간 내면의 본질이 주제인 작품들이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속인으로서의 삶 사이의 괴리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 지 결정하는 과정을 그린 토마스 만의 ‘토니어 크뢰거’, 한국 사회의 왜곡된 의식 구조와 권력의 행태를 풍자하고 비판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노년의 작가와 베니스의 미소년이 등장하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고, 그것은 무한한 허무를 안겨주었어요. 유한한 인간에게 고독은 숙명처럼 따라다니죠.”

소설 속 주인공을 표현할 때 인물의 표정은 중요하지 않다. 대상은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무채색 계열로 전체적인 분위기만 잡아낸다. “소설 속 인물의 외향이나 스토리보다 주인공 내면의 감정선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소설 속 인물과 작가 자신과의 동일시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작가는 같은 소설을 수십 번 읽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 작가의 심리나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강정이입을 높인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은 모두 철학에 가깝고, 인간의 심리나 내면을 다루 때문에 인물보다 인물이 가졌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최근 시작된 갤러리 맥향(대구 북구 중앙대로 114길 12) 이옥재 개인전 ‘그들에 대한 사랑’전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문학 속 주인공을 주제로 그렸던 예전 작품들과 달리 작가 가까이서 관찰한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사랑의 확장 버전에 해당된다. “계속 똑같은 인물을 그릴 수는 없었어요. 대신 다른 사람을 소설 속 인물에 투영하며 변화를 주었죠.” 문학 속 주인공을 그릴 때나 어린아이를 그린 때나 대상을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한 후에 그린다. “이 작은 아이도 고독과 허무를 안고 태어나지 않았겠어요? 문학 속 토니오, 타치오, 병태처럼 수없이 껴안으며 이 아이가 운명으로 가지고 태어난 고독과 허무를 쓰다듬었어요.”

소설가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시 같은 수필, 소설 같은 일기를 쓰고 있다. 내면의 일렁임을 글과 그림으로 동시에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능력이 되면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글을 쓰면 저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발표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림은 “화면 뒤에 자신을 숨길 수 있다”고 했다. “그림은 그림자가 있고, 글은 그림자가 없어요. 지금도 쓰기가 그리기보다 편하지만 그림자가 없어 제가 숨을 수가 없어 발표는 하지 않아요.”

주변 인물과 풍경 회화 20여점을 소개하는 전시는 27일까지. 053-421-200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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