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고건의 관운과 능력
<대구논단>고건의 관운과 능력
  • 승인 2010.03.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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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세상에 태어나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제일의 과제로 내세웠던 게 조선왕조시대의 가치관이었다. 그 당시에는 신분제도가 철저했기 때문에 아무나 입신양명의 반열에 들어설 수도 없다. 부모님의 피를 받아 고고지성을 지르며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양반의 자손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무지렁이 백성의 자손으로 태어나면 농사나 지으며 양반들의 치다꺼리가 평생의 업무가 된다.

그것도 자칫 광대나 백정의 집안에 태어난다면 가장 괄시받는 최하층의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광대는 연예인이라는 화려한 명칭과 함께 어느 누구나 꼭 한번 해봤으면 하는 직업이 되었지만 신분사회에서는 가장 서러웠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사실상 신분차별이 남아있었지만 조국광복과 함께 평등사회로 변모했다.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평등사회가 되면서 모든 가치관이 변했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전진이 황금제일주의를 낳았고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끼가 있는 사람은 연예계를 택하고, 힘이 있는 사람은 스포츠계로 진출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은 사회와 국가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성장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입신양명은 원래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다양하게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관존민비의 뿌리가 쉽게 사라지기야 하겠는가. 아직도 `고시’라고 하는 출세의 지름길을 붙잡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군상은 해 저물녘 길게 뻗은 그림자처럼 늘어서 있다.

조선시대의 과거(科擧)를 연상케 하는 고시(高試)는 정부 수립이후 수많은 출세자를 배출했다. 평등사회의 용어는 아니지만 한 마디로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작용했던 것은 틀림없다. 노무현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고졸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하여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 그 위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이번에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 고건은 오랜 세월을 넘나들며 최고의 관운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화제꺼리다. 그의 경력을 살피면 참으로 요란하다. 국무총리를 두 번 역임했으며 교통부, 농수산부, 내무부 등 장관만도 세 차례나 했다. 군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일도 있다. 그의 부친(고형곤)은 원래 철학교수 출신인데 전북대 총장을 지낸 후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했으니 부자 국회의원의 영예도 안고 있다.

고건 역시 명지대 총장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부전자전이다. 야인으로 있을 때에는 환경운동연합의 대표로도 활약하여 시민사회 운동가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있을 때 마침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대통령의 모든 직무는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서 마지막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그 때 고건은 사실상 대통령 노릇도 해봤다.

격동기에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사람은 허정, 박충훈 등이지만 고건은 정상적인 헌법절차에 따라 66일간이나 대통령권한을 대행했으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가 모처럼 독단으로 만천하를 뒤흔들 수도 있는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나대는 사람이 아니다. 권한이 주어졌다고 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 신중하고 조용하게 어느 선 이상은 결코 넘는 일이 없다.

게다가 도지사, 장관, 국무총리 등 현직을 거치면서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8개정부에서 공직을 맡았으면서도 지금까지 그 흔해빠진 스캔들 한번 나온 일이 없으니 얼마나 공인으로서의 처신을 훌륭히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는 두 가지 별명이 따른다. 하나는 `행정의 달인’이요, 다른 하나는 `처세의 달인’이다.

행정의 달인은 행정부에서 두루 섭렵한 경력 때문에 나온 얘길 것이다. 그러나 처세의 달인은 약간 비꼼이 있다. 다른 사람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온갖 고위직을 혼자서 여러 번하고 있기 때문에 주위의 시기 질투가 왜 없겠는가. 그래서 처세를 잘 했다는 비아냥을 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아첨 아부에 능하다는 표현으로 들을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에는 아유구용(阿諛苟容)으로 날 새는 사람들도 많다. 진시황 시절에 환관 조고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겨댄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모두 부귀영화를 누렸는가. 아첨배들도 결국 조고와 함께 무참하게 죽어야 했다.

고건의 출세는 그의 능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에 운도 따랐다고 하면 더 이상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고건의 관운과 능력은 어느 정권에서 일하더라도 편파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일 처리를 하지 않았기에 통했다고 본다. 사회통합에 큰 진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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