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실수
황당한 실수
  • 승인 2019.04.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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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개성이 넘치는 특정한 이름이 있다는 것은 참 편리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동·식물 등 자연이나 사물에도 이름이 있어 그들의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니,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과 이름을 합쳐 세 글자로 이루어지는 사람에 있어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같은 이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이름은 부르기 쉽고 듣기에도 편한 것이 아닐까.

일전에 있었던 황당한 실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좋은 제품 싸게 파는 기업으로 이름난 A유통업체의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시도하던 중 거듭되는 ‘인증 실패’로 조금 당황했다고 할까.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자에게 문의를 하려던 참이었다. 휴대폰의 연락처에는 같은 이름이 제법 여러 명 등록이 되어 있다. 정숙, 영순, 영희, 철수, 지훈 등 부르기 좋고 그 글자의 뜻까지 수수하고 아름다우니 많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도 하다 싶다.

검색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바로 원하는 이름이 나왔다.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 끝에 “어머, 안녕하세요”라는 가늘고 앳된 목소리가 예상 밖의 나의 전화에 무척 반가워하는 느낌이 전해져, 한결 기분이 밝아졌다. 편안하게 용건부터 말했다. 회원가입을 하려는데, 인증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인증 실패’로 되돌아가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머뭇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상하다. 분명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한 발 더 나가 회원가입 여부를 확인하려다가, 나의 흐릿한 뇌리에 한 줄기 번갯불이 훅 스쳐갔다.

“미안해요. 내가 다른 ‘○지은’ 씨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오랜만에 선생님 목소리 듣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절로 어깨가 축 처졌다. 다시 검색을 해보았다. 정작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지은’ 씨의 연락처는 저장이 되어있지 못했다. 하긴 카카오톡(kakao talk)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되고 있었으니, 따로 연락처를 저장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이스톡(voice talk)을 이용하고, 나중에야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한참이나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했던 내가 이렇게 황당한데, 상대의 기분은 어땠을까. 세대 차이가 커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화도 해보았다.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이 젊은 세대에게 해결방안을 물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최근 산업인력공단에 특정 분야의 자격시험 원서접수를 하면서 근 20년 전에 회원으로 가입했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지 못해 담당자와 서너 차례 긴 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해결한 일이 있었다. 그뿐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이나 무슨 생각에 몰두하던 중 아래층 주민을 만나 크게 웃었던 일도 있었다.

근래 들어 이렇게 황당한 실수를 자주 경험하는 것을 나이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나잇값의 기본이거늘. 기억력이 흐려지고, 집중력과 민첩성이 떨어지며, 작은 일에도 쉽게 당황하거나 중심을 잃게 되는 것은 꾸준히 보완해야 할 일이다.

비슷한 세대였으니, 기계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 또한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두 마디 안부만 물었어도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민망하다. 하긴 병원 진찰실에서도 동명이인으로 처방전이 바뀔 수도 있다니, 어디서나 같은 이름이 둘 이상이라면 거듭 확인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는 크고 두터운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같은 이름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창시절 한 학급에 같은 이름이 서너 명이나 있어, 출석번호나 키 또는 특징 등으로 구별을 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어디를 가도 같은 이름 만나기가 어렵고, 오히려 만나기라도 한다면 반갑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라 기대된다.

기회가 되면, 엉뚱한 질문에도 끝까지 불편한 내색 없이 반갑게 응대해준 ‘○지은’ 씨에게 사과와 감사의 상큼한 커피라도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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