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제주를 사랑한 작가의 숨결이 오롯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곳엔 제주를 사랑한 작가의 숨결이 오롯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김광재
  • 승인 2019.05.09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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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짜리 학교 건물 새단장
소박한 입구로 관광객 맞아
마당선 때론 음악회도 열고
뒤뜰엔 아늑한 무인카페도
김영갑갤러리두모악입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입구.
 

서귀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거의 아무 정보도 갖지 않은 상태로 찾아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이란 사진가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라는 것만 알았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르는 채였다.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시대에 백지 상태로 찾아와서,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둘러봤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스토리를 모르고 감동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쇠와 돌과 나무가 어우러진, 붉고 검고 푸른 입구가 소박하고 편안했다. 방문객들을 맞는 조각상의 주황색 원피스에는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다. ‘내비’가 일러주는 대로 운전해 온 관광객에겐 ‘외진 곳’이란 말이 고풍스럽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물어물어 찾아온 손님에게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인사였으리라.

구멍이 숭숭 뚫린 돌과 거무스레한 흙, 짙어가는 초록의 나무와 풀 그리고 정겨운 토우 작품들이 있는 정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주의 명소로 이름난, 사진 찍기 좋은 정원들과는 결이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정원 속을 거닐고 있는 이 순간, 이 분위기에 그냥 젖어들라고 하는 것 같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이곳이다 싶은 곳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갤러리 건물 앞에는 ‘배움의 옛터’라고 새겨놓은 돌이 서 있고, 그 옆 덩굴이 타고 올라간 돌기둥에는 ‘삼달초등학교’라는 씌어진 석판이 붙어있다. 갤러리 건물을 다시 보니 단층짜리 학교 건물을 새단장한 것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아름답게 가꿔놓은 곳은 보지 못했다.

정원 한 구석에는 1963년부터 70년까지 세워진 공덕비가 네 기가 있다. 삼달리 출신 재일교포들이 고향에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재산을 희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일 삼달리 청년회원 일동’이라고 적힌 비도 있다. 삼달리 출신으로 청년회가 꾸려질 정도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특히 제주에서는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 그중 성공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던 고향마을을 도왔다. 제주도에는 마을 입구에 이러한 재일교포 공덕비가 세워진 곳이 많다.

삼달리 마을 사람들과 이곳 출신 교포들의 정성으로 세워진 학교가 1998년 폐교되고, 제주 출신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했던 한 사진가에 의해 가장 제주다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실외 공간 평화로움과 달리
갤러리 사진 강렬함 돋보여
파노라마로 담은 명소 풍경
외로우면서도 풍요로운 빛


삼달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이었을 공간에는 아담한 크기의 야외 무대와 마당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 음악회도 가끔 열리는가 보다. 지금은 마당 둘레 키 큰 나무들 속에서 새들의 다채로운 노랫소리만 들려온다. 노래처럼 들리지만 새들에겐 살아가려니 해야하는 신호이거나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수다일 테지. 갤러리 건물 뒤편, 숙직실이었을 작은 건물은 무인카페로 꾸며져 있다. 뒤뜰은 오래된 장독들과 기이하게 생긴 현무암들로 앞뜰과는 또 다른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실외 공간은 정성들여 세심하게 가꾼 곳인데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다. 어느 하나 툭 불거지지 않고, 모두 조화롭게 제자리에 있는 차분함과 평화로움이 있다. 꼭 필요한 만큼만 하고 멈출 줄 아는 겸손함을 보는 듯하다.

 

김영갑-3
김영갑 사진작가의 작품.
 
김영갑
김영갑 사진작가의 작품.
 
김영갑
김영갑 사진작가의 작품.
 
김영갑-4
김영갑 사진작가의 작품.
 

 

정원에서의 느낌과 달리 갤러리 안에서 만나는 김영갑의 사진들은 강렬하다. 파노라마 카메라로 담아낸 제주의 풍경은 텅 비어 외로우면서도 풍요로운 빛이 있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어떤 세부요소가 불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위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운이 마음을 흔든다. 이상한 것은 사람이 없는 풍경에 풍경 바깥 사람들의 삶이 겹쳐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감동

설명할 수 없어 사진에 표현 


제주와 제주의 삶을 사랑했던 작가가 모든 것을 던져 건져낸 작품과, 병마에 사로잡혀 셔터를 누를 수 없게 됐을 때 남아있는 모든 것을 던져 만든 갤러리는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김영갑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1982년부터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다 섬에 매혹된 그는 1985년 아예 제주로 들어와 정착했다. 섬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 오름,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을 찍었다. 극심한 가난에도 돈 안되는 사진을 계속 찍어오던 그는 1999년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다. 2002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투병 6년만인 2005년 5월 29일, 숨을 거두었고 그의 뼈는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이다. 20여 년간 제주도에서 사진 작업을 해온 고 김영갑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의 카메라와 유품이 전시된 공간도 마련돼 있으며, 그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 휴관. 064-784-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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