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엔 어미소의 눈물, 저쪽엔 대장간의 쇳물...뜨겁긴 마찬가지구나
이쪽엔 어미소의 눈물, 저쪽엔 대장간의 쇳물...뜨겁긴 마찬가지구나
  • 김광재
  • 승인 2019.05.16 21:4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달 4로 끝나는 날 열리는 우시장
이날은 번식우 경매…새끼도 딸려 나와
사람이 다가가니 어미소는 잔뜩 경계
조선시대 형성돼 번창해온 대가야시장
3대째 이어온 대장간 열기 여전히 후끈
곳곳 북적이는 사람들 활기로 가득차
 
고령성주축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령가축시장(우시장)은 매월 4, 14, 24일 열린다.
고령성주축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령가축시장(우시장)은 매월 4, 14, 24일 열린다.

 

고령우시장과 대가야시장을 가다


고령대가야시장 부근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시장을 찾아갔다. ‘우시장’이란 말이 친숙하지만, 지도검색을 하려면 ‘고령가축시장’으로 해야 한다. 장터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가축시장이 있다. 고령소방서를 지나 계속 걸으니, 출입차량 자동 소독 장치가 설치된 입구가 보인다. 마당에는 소를 싣고 온 트럭이 즐비했다.
 

고령우시장4
고령가축시장 경매장.

9시가 좀 넘은 시각, 경매장에 들어서니 14번째 암소를 경매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경매번호, 출하주 성명, 예정가 500만 원, 어미 고등, 계대 3, 우량암소 임신 7개월’ 등 경매대상 소에 대한 정보가 표시돼 있다. 낙찰이 되자 바로 “낙찰자 49, 낙찰가 510만 원”이라고 전광판에 뜬다. ‘어미 고등, 계대 3’은 이 소의 한우등록에 따른 혈통 정보인데, 어미의 등록단계가 고등이고 계대 수가 높으면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고 한다.

경매는 낭랑한 여성 아나운서의 녹음 목소리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유찰이 되면 최저가를 15만 원씩 낮춰서 재경매를 하고, 3번 모두 응찰자가 없으면 최종 유찰된다. 응찰자들은 휴대용 단말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흥정이나 막걸리는 옛날이야기다. 그 대신 엑셀문서로 출력한 출장우(出場牛) 내역서와 생수병이 있다.

예전에는 고령장날 마다 우시장도 함께 열려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섰다고 하는데, 수년 전부터 4로 끝나는 날 세 번만 경매가 이뤄진다. 이날(14일) 경매에는 번식우 약 120마리가 경매에 나왔다. 4일에는 고기를 얻기 위한 일반우(비육우)가, 24일에는 송아지가 출품된다고 한다.

번식우를 경매하는 날이니 새끼와 함께 나온 암소도 몇 마리 눈에 띈다. 어미도 새끼도 철봉에 바투 묶여 움직일 여유가 거의 없는데, 송아지에게 사람이 다가가니 어미는 새끼를 보호하려고 몸을 새끼 쪽으로 바짝 붙이며 경계한다.

5개월 된 수송아지와 함께 경매에 붙여진 어미소가 1차 유찰이 됐다. 15만 원을 낮췄으나 또 유찰됐다. 다시 15만 원을 낮춰 재경매가 진행되려는 순간, 누군가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른다. 아마 암소 주인이 그렇게는 팔지 않겠다는 말인 듯했다. 유찰된 누렁소 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저 누렁소 모자에게는 잘 된 일일까?

 
고령대가야시장
고령대가야시장.


우시장을 나와 대가야시장으로 향했다. 우시장 건너편 집 담에 그려진 벽화에는 코뚜레를 한 소 두 마리가 풀밭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끌던 소는 사라졌다. 이제 코뚜레는 카페 인테리어 소품으로 팔리는 시대가 됐다. 일하는 소가 사라진 것은 소에게 잘된 일일까?

고령장은 조선시대에 형성돼 번성했으며 구한말 대홍수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10여 년전 어느 초여름날,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령장에 온 적이 있었다. 장날에 맞춰 구경 간 것이니, 4 아니면 9로 끝나는 날 중의 하루였다. 이번에 와보니 화장실, 고객쉼터,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더 갖춰졌고 깨끗해졌다. 고령읍이 대가야읍으로 이름을 고쳤고, 시장도 고령대가야시장으로 바뀌었다. 파출소 쪽 입구에는 현대적 감각의 철제 조형물도 서 있다.

 

고령장의 명물로 알려진 대장간. 이 대장간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고령장의 명물로 알려진 대장간. 이 대장간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농사일이 바쁠 때여서인지, 아직 사람들이 몰릴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복잡하지는 않다. 고령장의 명물로 알려진 대장간을 찾아가봤다. 대장간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 대장간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10년 전에는 2대 이상철 장인이 달군 호미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 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이번에는 그의 아들인 이준희씨가 그라인더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고령대장간의 한 세대가 넘어간 듯 싶다. 1천500년 전 철의 왕국 옛터에서 불과 쇠와 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골목 저골목 시장 구경을 한다. 강아지, 토끼, 고양이가 새 주인을 기다리며 졸고 있고, 나프탈렌을 가득 담은 수레도 냄새를 풍기고 있다. 어물전, 건어물전, 그릇전 등 가게들이 활짝 열려 있고, 장터에 어울리는 갖가지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들과 가죽나무 순 몇 묶음을 놓고 앉아있는 할머니도 있다. 사람 통행이 많은 노점에 고구마 모종을 수북이 쌓아놓고 있는 상인들이 있는 걸 보니 지금이 고구마 심을 때인가 보다. 고추, 호박 등 모종을 파는 사람들도 몇 사람 전을 펴놓고 있다. 낯선 모종도 보인다. ‘모링과’라고 적어놓았는데, 요즘 ‘기적의 나무’로 주목받고 있는 ‘모링가’이다. 동남아에서 먹어본, 떫은 맛이 나다가 물을 마시면 단맛이 번지는 이상한 열매였다. 그 나무가 시골 장터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물건이 모이는 시장이니 늘 같아 보여도 늘 변화가 있다.

 

 

수구레국밥
고령 대가야시장 수구레국밥

 

‘아점’을 먹으러 수구레국밥집에 들어간다. 수구레는 소 가죽에 붙어있는 지방질 많은 질긴 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구레, 수구리라고도 한다. 고령, 현풍, 창녕 등지의 장터에는 수구레국밥이 유명하다. 국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우시장에서 본 소의 모습과 국밥 속이 고깃덩이가 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사람의 뇌는 참 편리하게 진화했다고.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창환 2019-06-13 11:17:43
한없이 감성적이나, 한없이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기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게 아닐까?

갈수록 편리함이 쫌 심해지기는 하지만~~

박윤미 2019-05-20 18:49:54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ㅜㅜ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동영상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