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의 반(半)
반(半)의 반(半)
  • 승인 2019.05.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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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저마다 지식의 정도와 상식의 범위에서 해석을 달리한다. 여기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해하면 소통을 하고, 갈등하면 마찰과 균열을 가져온다. 시너지(synergy)는 분산 상태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적응해 통합되어 가는 과정, 또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힘이나 효과를 뜻한다. 반대로 역 시너지(reverse synergy)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너지가 1+1=3이라면 역 시너지는 1+1=1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경영학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다. 기업 간에 인수합병하면서 주가가 급등하는가 하면, 급락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슬픔은 나누고 기쁨은 더하라고 했다. A와 B가 더해져서 삶의 무게가 더해지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삶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2인3각 경기라는 게임이 있다. 두 사람이 좌우 한쪽의 발을 묶어, 3개의 다리(脚)로 달리는 방식이다. 주목할 것은 묶을 때, 두 사람이 똑같은 발을 내밀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왼발을 내밀면, 한사람은 오른발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달릴 수 있다. 같은 발을 묶으면 서로 반대의 방향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 아니, 한걸음도 달릴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결승점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배려와 호흡이다. 숨소리만으로 발을 맞출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구령에라도 맞춰야 한다. 어느 한쪽이 뛰다가 쓰러지면,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외롭다. 중2학년 여학생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손목을 그은 사건이 있는가하면, 핸드폰을 부모님보다 신뢰하고 의지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아이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고 있는가. 부모는 예전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표현에 인색하지 않다. 과잉보호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자녀의 안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어디를 가나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한 아이가 투신하는 사건도 있었다.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전북 남원의 한 아파트에서 시각장애인이 희귀병을 앓는 형을 살해하고 본인도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본인은 생명을 건졌지만, 앞으로 살아갈 삶은 어떨지 생각해보면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뼈가 물러지는 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형을 지켜보는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안락사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할 사안이다. 극한고통을 멈추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도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그 의지가 약해졌을 때 힘을 보태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도 인간이 할 일이다. 이 사건은 수사결과가 나와야 명료해지겠지만, 정황으로 보면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자살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는 말이 있다. 형제자매가 죽어서 몹시 슬퍼할 때 쓰는 말이다. 대개의 경우 힘을 합치면 강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어떻게든 견뎌냈어야 했다. 비록 형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도, 그런 형을 보살피는 것이 동생을 힘들고 지치게 해도 이겨냈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나눔과 합침의 연속이었다. 인종과 종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로 나뉘고, 선진국과 후진국이 나뉘고, 서양과 동양이 나뉘고 대륙에 따라, 대양에 따라 나뉘어져왔다. 남과 북도 38도의 각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가. 약소국들은 강대국에게 무력으로 강점당했다가 독립과 해방을 거듭해왔다. 이념의 양분화가 소멸되었는가 하면, 경제양분화가 신생되기도 했다.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평화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어느 곳에서는 유혈사태가 예견되는 일촉즉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는 몇 시를 가리킬까. 여의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야도 흐리다. 단지 미세먼지 탓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대선을 앞두고 말꼬리 잡기에 연연한 여야의원들의 우매함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정권을 획득하려는 정당의 목적은 알겠으나, 국민들이 내려놓은 정당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도 없음은 분명하다. 시너지효과까지는 아니어도 역 시너지는 아니어야 한다. 국민들이 안위를 위협받고, 국가의 발전이 퇴보된다면 과연 여야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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