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동아백화점 매각 참 안됐다
<대구논단>동아백화점 매각 참 안됐다
  • 승인 2010.03.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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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고만 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동네 어귀 3층 큰 양옥집은 마당도 엄청 넓은지 큰 대문 안으로 여러 대의 승용차가 자주자주 드나들었다. 각기 모양이 다른 검정색, 흰색, 빨간색 외제차를 보면서 동네사람들은 그 집 주인, 부인, 아들딸들이 타는 차이려니 지례 짐작하면서 그 집이 참 부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집 사람들이 부자 티를 내지 않아 친근감이 생겼고 그들과 한 동네에 산다는 것에 은근한 긍지심마저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그 집이 외지인에게 팔렸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깊은 속사정은 알 길이 없으나 들려오는 말에는 큰 회사를 경영하던 그 집 주인이 회사 운영이 어려워 집을 팔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집을 팔던 이사를 가든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수십 년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들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부잣집 주인의 좋은 인심 때문 이었을까, 아니면 사업이 여의치 않아 집을 팔지 않을 수 없었다는 데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몇 사람만 모여도 부잣집 팔린 일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은 집을 헐값에 잘 샀다든가, 대구에 연고가 별로 없는 외지인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동네 분위기는 그 전만 하겠느냐는 등 등 이런 저런 뒷말이 무성했다. 위의 글은 대구시민들과 묵은 정이 듬뿍 들었던 동아백화점이 국내 굴지의 서울 기업에 팔렸다는 말을 듣고 나름대로 만들어 본 픽션이다.

1972년 가을, 동아백화점이 대구의 메인 거리 동문동에 처음 문을 열었을 즈음 재래시장만 이용해 오던 시민들에게는 백화점이 눈요깃감이었고 쉴 수 있는 고급 공간이었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깔끔하게 디스플레이 해 놓은 상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남이 이해하지 못할 별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칠성시장이나 서문시장 이곳저곳을 배회하면서 왁자지껄한 생존현장을 보고 듣고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면서 축 쳐진 자신을 다그치는 버릇이 있었다. 유통구조가 바뀌면서 시장 보다 백화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도 예의 시장을 찾는 버릇을 못 버려 집사람으로부터 핀잔을 듣는 때가 가끔 있다.

남들은 쉬는 날 자동차 드라이브도 하고 웰빙 음식을 먹으러 간다고들 하지만 옛 버릇을 못 버린 나는 시내 중심가의 도시변화를 만끽하면서 나도 모르게 발길은 백화점으로 향한다. 꼭 뭔가를 사려는 것은 아니지만 조명이 잘 돼 있는 백화점에서의 아이쇼핑과 즐거운 고객들의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러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쇼핑도 하지 않으면서 백화점 안을 서성이는 나를 감시 카메라가 많이도 찍었을 것이라고. 엊그제 친구 내외와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동아백화점 얘기가 나왔다.

동아백화점 매각이 우리들과 상관은 없지만 뭔가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에 이구동성, 네 사람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생각은 공동수치를 갖는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된 것이다.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이 확정되자 울먹이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 여린 국민들은 울컥하고 찡한 감정을 가졌었다.

동아백화점이 외지 기업에 팔렸다는 말을 듣고 뭔가 울컥한 마음이 된 것은 김연아 경우와 같은 것일까. 사람은 정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동아백화점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연민의 정은 따로 있다. 지역의 토종 유통업체가 밀림의 법칙에 따라 강자에게 먹힌 것에 대한 애석함이 아니다. 동아백화점과의 깊은 애환의 정 때문이다.

동아백화점이 타인의 손에 넘겨진 것은 한 동네에 살던 정들었던 이웃이 이사를 간 것과 같은 허허한 아쉬움이다. 38년 성상을 시민들과 같이 하면서 애지중지 키워온 백화점을 타인에게 넘겨준 사주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인수업체가 동아백화점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토록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은 인정은 얼마간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것마저도 없어지겠지. 동아백화점 매각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참 안됐다’라는 한결같은 마음은 풍진 많은 이 세상에서 그래도 청량제가 아닐는지. 대월동화(大月東火)란 억지 사자성어, 대구시민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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